길 위의 호남 선비, 백호 임제를 재평가한다(5)
길 위의 호남 선비, 백호 임제를 재평가한다(5)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10.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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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나주의 백호문학관에서 ‘백호와 제주’란 전시물을 보았다. 1577년 9월 문과에 급제한 임제(1549∼1587)는 11월에 제주목사인 아버지 임진을 만나러 제주도로 갔다. 그는 3개월간 제주에 머물렀는데 「남명소승」이라는 여행기를 남겼다. 「남명소승」에는 제주도에 대한 지리 · 풍속 · 언어 · 토산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1578년 3월에 임제는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남원에 들렀다. 이때 남원부사 손여성이 임제를 위해 광한루에서 전별잔치를 해주었다. 이 자리에는 송암 양대박(1543∼1592), 손곡 이달(1539∼1612), 옥봉 백광훈(1537∼1582)도 참석했다. 광한루 전별연에서는 시회(詩會)도 열렸다. 양대박이 먼저 시를 짓고 이달, 백광훈, 임제가 차운하였다. 이 시집이 바로 「용성광한루주석창수집(龍城廣寒樓酒席唱酬集)」이다.

그러면 양대박의 원운 시부터 감상하자. 7언 율시이다.

신선누각 이 모임은 세상에서 드물 것이니

아름다운 시절 청담에다 좋은 시까지

은 촛불 환한 곳에 꽃 그림자 옮겨가고

옥난간 높은 곳에 달로 자리 바꾸누나.

평소에 마음껏 마시고 미친 듯 노래 부르던 곳에서

오늘 밤 만났다가 작별을 아쉬워하네.

아득히 먼 길 생각하면 아득한 한 만 생기나니

자리 옆의 버들을 꿈에서도 그리워해보네.

 

다음은 손곡 이달의 차운 시이다. 압운은 첫 수는 2,4구의 시(詩), 이(移)이고, 둘째 수는 시(時), 사(思) 이다.

몇 달 동안 집 떠나서 편지도 드물었고

가는 봄 애석하여 봄 보내는 시를 짓노라.

서로 만났다가 동으로 서로 떠나가니

방초 우거진 시절 한없는 그리움일세.

날리는 버들개지 떨어진 꽃 정처 없거늘

실컷 노니는 때와 좋은 모임 또한 같은 때라.

서로 만났다가 동으로 서로 떠나가니

방초 우거진 시절 한없는 그리움일세.

 

다음은 옥봉 백광훈의 시이다.

남북으로 소식이 끊긴 지 몇 년이런고?

술잔 잡고 춘성(春城)에서 다시 이 시를 쓰노라.

베개머리 물소리에 바람도 은근히 도는데

주렴 걷으니 꽃 그림자 달은 갓 옮겼구나.

취하니 경물은 아스라이 꿈과 같고

늙어가니 마음에 맺힌 것도 풀리는 가 싶소.

이상히 보지 마오, 깊은 밤 다시 일어나 앉은 걸

이별에 당해서 어찌 생각하지 않으리오.

 

마지막으로 백호 임제가 읊었다.

손님과 주인 즐기는 자리에 속물은 드물어라

온 누각에 나만 빼고 시(詩)를 다 잘 하시네.

난간 앞의 저문 산은 구름이 갓 걷히고

맑은 햇빛 사람 밀어 자리 자주 옮기누나.

반은 깨고 반은 취해 밤이 이슥한 뒤요

만나자 이별이라 꽃 지는 시절이네.

다리 가의 능수버들 연기 엉겨 새파라니

한 가지 꺾어내어 임에게 주고지고.

양대박은 남원 출신으로 우계 성혼의 문인인데 선조 초기에 천거로 제용감 주부를 지냈다.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이종 간인 유팽로와 함께 제봉 고경명에게 거병을 권유하였고 5월29일의 담양 추성관 회맹을 주도했다.

양대박은 튼튼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남원을 중심으로 1천 여 명의 의병을 더 모았고, 6월25일 왜군과의 운암전투에서 승전을 이끌었다. 아깝게도 그는 1592년 7월에 병으로 죽었다.

손곡 이달과 옥봉 백광훈은 고죽 최경창(1539∼1583)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이달은 허균의 스승이다. 백광훈은 원래 장흥에서 태어났는데 맏형은 우리나라 기행가사의 효시인 「관서별곡(關西別曲)」의 저자인 기봉 백광홍(1522∼1556)이다.

백광훈은 1577년에 선릉참봉을 하였고 1582년에 소격서 참봉을 하다가 서울에서 별세했는데, 상여는 해남으로 내려왔다. 이 때 선조 임금이 영여(靈與)를 하사했는데 지금도 해남군 옥천면 옥봉 유물관에 비치되어 있다.

백광훈 별세 시 해남현감이었던 임제는 ‘백옥봉 만사’ 2수를 지었다.

백옥봉 만사 (白玉峯 輓詞)

제1수

근세의 재주있는 인물(才子)를 논하자면

그대가 우뚝 무리에서 빼어났었네.

누구 있어 고조(古調)를 추구하리.

다시는 그런 글 찾을 길이 없어라.

제2수

옥수(玉樹)는 종내 황토로 돌아가니

청산엔 단지 백운(白雲)뿐이로세

제(祭)지내고 오직 청주(淸酒)만 남았기에

외로운 무덤 앞에 쓸쓸히 뿌리오. 1)

▲ 백호문학관에 전시된 ‘백호와 제주’

1) 이 만사는 「옥봉집」 별집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백호 임제 지음, 신호열 · 임형택 외 편역, 신편 백호전집(상), 창비, 2014, p 431-432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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