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프린지페스티벌, 명품축제 성장 가능한가(5)
광주프린지페스티벌, 명품축제 성장 가능한가(5)
  • 김다이, 송선옥 기자
  • 승인 2017.07.24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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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문화예술인
20년간 자발적인 ‘자유로운 참가’ 원칙 지켜
 

문화수도 광주에서는 지난해부터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인 금남로에서 ‘프린지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다. 올해 광주는 ‘광주프린지페스티벌’과 별도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협업해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을 개최하는 등 국제적인 축제를 하나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시민의소리>는 서울, 제주, 통영, 아산, 대전, 영국 에든버러 등 국내·외 진행되고 있는 프린지페스티벌의 현장을 찾아 태동기에 있는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의 성공을 위한 추진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프롤로그
②광주형 문화난장, 프린지페스티벌의 방향성을 찾자
③대전프린지페스티벌이 사라진 이유
④제주프린지페스티벌, 트랜드 초읽기
⑤서울프린지페스티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문화예술인
⑥음악 창의도시 통영, 프린지페스티벌의 정통성 찾기
⑦지역 예술제의 주변부, 아산 ‘전국프린지페스티벌’
⑧프린지 모태,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의 현주소
⑨거리 축제의 꽃, 에든버러 차별성은 무엇인가
⑩에필로그-광주프린지페스티벌 성공을 위한 추진과제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한 여름 뙤약볕의 무더운 더위보다 더 뜨거운 현장이 있다. 이제 막 예술가의 길에 발을 딛는 젊은 아티스트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낮부터 젊은 아티스트들의 외침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난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제20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열렸다.

예술판에서 삐딱선을 타던 이들이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축제를 펼쳐보겠다고 시작한 서울 프린지페스티벌은 대학로에서 예술의 전당, 그리고 홍대에서 현재 월드컵경기장으로 무대를 옮겨 진행되고 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민간주도라고 일컫는 형태 조차 없었을 당시 정말 예술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모여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주체성과 자발성을 갖고 무모하게 시작을 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지난 1998년 대학로에서 독립예술제로 시작을 알렸다.

참가비 내도 자발적인 참여 지속

1998년 ‘독립예술제’로 시작을 알렸던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학교에서 교수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뛰쳐나온 사람들, 해외 유학파들, 스트리트 댄서들, 하이텔, 천리안 연극 커뮤니티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독립예술을 위한 판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그래서 굉장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첫발을 내딛었다. 보수를 받은 예술가들이 참여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쌈짓돈, 뭉칫돈을 내어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돈 문제는 생각하지 않았다.

19년 전 서울에서 변방의 예술가들이 스스로 축제를 만들었던 점은 1947년 시작된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의 개최배경과 일맥상통한 부분이다. 바로 그 점이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 프린지페스티벌 중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갖고 있는 특별함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참가작의 심사를 원천 배제하여 예술인에 대한 자격요건과 장르제한을 두지 않고, 오로지 ‘자유로운 참가’를 원칙으로 축제를 이끌고 있다.

또한 연극, 무용, 음악, 퍼포먼스, 미술, 영상 등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참가자들은 스스로 참가비를 내고, 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다.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참가비를 내는 대신 프린지 티켓 수익은 사무국과 전체 공연 팀에게 일정 비율로 나누어진다. 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기량을 펼친 만큼 티켓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누구하나 무대를 대충 꾸미지 않는다.

이는 1998년 ‘독립예술제’로 시작했을 초창기부터 예술가들에게 공연수익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2001년 프린지페스티벌의 무대를 홍대로 옮겼을 때는 참가비가 아닌 예술가들이 프린지네트워크와 일정 비율로 대관료를 함께 나누어 부담하고, 티켓수익을 분배 받았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정진세 운영위원은 “현재 예술가들에게 받는 참가비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며 “참가비를 받는 것은 아티스트들이 단순히 이 공간을 무료로 쓰는 게 아니라 공연을 하면서 원칙도 지키고, 일종의 책임감이 될 수도 있다. 또 프린지네트워크가 공연에 대한 홍보나, 리뷰, 촬영 기록 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고 설명한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홍보팀 남하나 씨(왼쪽),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운영위원 정진세 씨

홍대 현장에서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

‘독립예술제’라는 명칭은 2002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로 바뀌게 된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홍대 앞에서 젊은이들이 하는 축제라는 대표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홍대 앞에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프린지에도 타격을 입혔다.

홍대 앞에 있던 프린지페스티벌의 사무실 월세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르게 되었고, 여러 다른 축제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사라져갔다. 서울프린지는 과연 홍대 앞에서 독립예술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정진세 운영위원은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공간에서 독립예술이라는게 과연 가능할까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며 “그러다 서울시장이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월드컵 경기장의 축구경기가 1년에 30일 정도밖에 없어 365일 중에 330일 축구장이 논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러한 공간을 놀리지 말고 사무실 같은 공간은 민간 NGO 비영리기관에게 지원하라는 말이 나왔고, 프린지 사무국이 응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어 정 운영위원은 “저렴한 액수에 월드컵경기장으로 사무실이 들어온 이상 비어있는 이 공간을 예술가들이 써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다”며 “그 다음부터 프린지페스티벌의 장소를 홍대 ⅔, 월드컵경기장 ⅓, 그 다음 해에는 반반으로 프린지의 무대를 점진적으로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단계를 밟았다”고 말한다.

현재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홍대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옮겨졌다. 월드컵경기장의 스카이박스는 ‘프린지 빌리지’로 예술가 스스로 공간과 작품을 실험하고 탐구하는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프린지가 홍대에서 진행됐을 당시에는 극장 하나를 빌리는데 60~70여만 원의 대관료가 들었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옮긴 뒤에는 대관료가 필요 없게 됐다. 어쩌면 굶주려있는 젊은 예술가, 아직 극장에 갈 준비는 안 된 예술가들에게는 홍대보다 더 적합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축구장은 시민들에게 단순히 축구만 보는 공간이 아닌 재미있는 공간이 됐다. 시민들은 거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시절인 축구장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예술도 볼 수 있다는 게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반면 월드컵경기장 안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제한적이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프린지네트워크는 관객 개발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홍보팀 남하나 씨는 “여러 방향으로 관객개발을 하고 있다. 관 주도로 하는 경우에는 동원이 가능하겠지만, 요즘 굉장히 핫(hot)하고 화려한 축제들 사이에서 관객동원을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며 “독립예술에 새로운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 오신다.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도 아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많이 오신다”고 설명했다.

총감독 체제 아닌 집단 지성 책임제

프린지네트워크는 프린지페스티벌 기간 동안만 반짝 가동되는 조직이 아니다. 이들은 독립예술가들을 계속해서 보살피고, 기획해주는 미션을 갖고서 봄, 가을에도 포럼형식으로 축제를 열고 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총감독 체제가 아니다. 총 책임 감독제를 없앤 이유는 프린지의 성격을 살리기 위한 방침이었다. 감독이 작품을 선별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참가 원칙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정진세 운영위원은 “다른 축제들은 먼저 총감독이 작품을 고르고 배치함으로써 축제의 성격이 그려지는 반면에 프린지는 누가 올지 모르고 그 해에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며 “1인 예술감독 체제가 아닌 여러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예술가들을 보살피고 소통하며 세심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정 운영위원은 “성장하는 예술가만큼 기획자가 성장하지 못하고 조직을 못 견뎌 나가기도 하고, 축제감독이 그만두게 되면 축제가 사라지는 지속성 문제를 고민하다 보니 감독 1인이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방식이 아닌 집단 지성을 이용해보자라는 의견으로 모아졌다”고 덧붙였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해마다 새로운 프로그래머들이 들어오며, 기존 프로그래머와 협업을 통해 축제의 지속성 문제를 고민한다. 예술가들 서로가 책임지고, 의사결정을 합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듯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은 20년간의 저력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프린지페스티벌을 이끌어온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현장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성을 살펴봐야할 필요성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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