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과 대설(大說)
소설(小說)과 대설(大說)
  •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7.05.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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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누군가는 ‘소설은 알겠는데 대설은 무엇이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리라. 중국에서는 서사물(이야기)을 소설과 대설로 분류한다. ‘소설’은 모든 꾸며 낸 이야기이고 ‘대설’은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 즉 역사다.

재미 중국학자 루샤오펑은 그의 역저 『역사에서 허구로 ; 중국의 서사학』에서 소설과 대설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류샤오펑, 역사에서 허구로, 조미원외 2인역)길, 2001, 강릉). 이 책은 서사학을 폭넓게 공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런데 대설은 진실을 기록한 것이고 소설은 허황되게 꾸며낸 이야기라는 우리의 상식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맨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2014년 5월19일 발표 작품 『소년이 온다』의 출판일을 굳이 밝히는 것은 공교롭게도 5.18 다음날인 5월19일에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맨 부커상 수상작은 「채식주의자」였지만 나는 이 작품으로 수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작가의 극히 절제된 서술 태도가 우리를 더욱 감동시키고 울분을 끓어오르게 한다. 나는 이 작품이 출판된 지 일주일 후에 서점에서 사서 읽었다. 세월호 참사, 5.18 기념일의 개운찮은 뒷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작품을 읽고 나니 분노가 야금야금 끓어올랐다. 그 무렵 마침 충남대의 「충남대 명예교수회 소식」 45호에 실릴 원고 청탁이 있어 「소년이 온다」를 중심으로 “대설과 소설 사이”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16매 정도의 수필을 썼다.

글이란 참 묘한 것이다. 같은 글이라도 언제, 어떤 매체에 발표했느냐에 따라 전혀 반응이 달리 나타난다. 소식지 45호가 나왔어도 아무에게서도 그 글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 아마 보수적인 퇴직 교수들이라 대부분 외면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과 내 제자들에게 복사해서 주었더니 뜨거운 반응이 일어났다. 그래서 같은 말도 누구에게 했느냐가 중요하다.

오늘(2017. 5.18) ‘광주 민주화운동’ 37돌 기념식은 문자 그대로 감개무량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바뀌니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가 달리 느껴진다. 악의 편에 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횡포와 그 동조 세력들, 작년 황교안 국무총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때 굳게 닫힌 입, 그 입에게 오늘의 기념식 소감을 묻는다면 뭐라 말할 것인가. 그런 자들에게 통치당했다는 게 부끄럽고 치가 떨린다. 그래서 식민통치를 받으면 그 기간의 5배, 독재통치를 받으면 그 기간의 4배의 시간이 걸려야 그 잔재가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다고 했던가.

한 마디로 말해서 「소년이 온다」는 소설의 시점과 초점화를 바꾸어 가면서 잊혀져 가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열 서너살 소년 ‘동호’만도 못한 살아남은 우리에게 각성을 주는 작품이다. 이 말을 부풀리고, 이리 뒤져기고 저리 뒤져기면 100장 정도의 논문도, 더 부풀리면 1000장 정도의 박사 학위 논문도 된다. 그러나 글 내부를 관류하는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거짓 증거로 서술된 역사는 꾸며 낸 소설보다 못하다.

꾸며낸 가짜 역사를 교육시키려고 박근혜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편찬한다고 도둑놈들 장물나누기식으로 교과서를 편찬했으니 역사의 추상같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악의 세력에 빌붙어 가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한 소위 어용교수 내지 어용학자는 학계에서 몰아내야 한다. 새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과거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미래의 보다 큰 잘못을 키우는 것과 같다.

소설만도 못한 대설은 물러가라. 전두환 이순자 내외가 뻔뻔하게 내놓은 회고록은 쓰레기만도 못하다.

그대들에게「소년이 온다」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소년’은 어제도 오고 오늘도 오며 내일도 올 것이다. 소년은 조용히 그러나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다. 걸어오면서 나의 죽음과 그 진실을 밝혀 달라고 말을 걸어온다.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은 산자의 몫이다. 산자는 용감하게 그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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