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멜리나 메르쿠리
박근혜와 멜리나 메르쿠리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7.03.0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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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얼핏 보아 박근혜와 멜리나 메르쿠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으나 대조할 만한 점이 많다. 박근혜는 잘 알다시피 박정희의 딸로 태어나 청와대에서 18년 생활을 했다. 1998년 정계에 투신하여 국회의원 12년, 대통령직 4년을 한 화려한 정치 경력을 가지고 있으나 작년 12월9일 국회에서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불운한 정치가이다. 그러나 그녀의 탄핵소추는 국정파탄으로 몰고 간 본인의 과오가 분명하다. 본인의 과오가 분명한데도 구차한 변명과 거짓말로 현 상황을 모면하려는 박근혜는 비겁한 정치가다.

반면에 그리스의 여배우이자 가수였던 멜리나 메르쿠리는 그리스에 1967년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의 군사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분연히 일어나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스 군사정권은 그녀의 그리스 시민권을 박탈하고 국외로 추방하였다. 그녀는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배우와 가수 활동을 하면서 반독재, 반군사정권 활동을 병행하였다. 그녀는 일찍이 1960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국제적 명성이 높은 여배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그녀가 주연한 <일요일은 참으세요>, <페드라>가 수입되어 상연된 바 있다.

1973년 그리스 군사정권이 키프러스 문제로 영토전쟁을 벌여 패배하는 바람에 멜리나 메르쿠리는 당당하게 아테네 공항을 통하여 귀국하게 된다. 이 때 비행기에서 내린 그녀가 “아, 하늘이여.”라고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 “아, 땅이여.”하고 외치며 땅에 키스를 했고 다시 “민주주의”라고 한 말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아마 그녀가 아테네 공항 바닥에 키스한 후 “아, 땅이여.”라고 한 말 속에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아테네에서 군사독재가 왠말이냐’는 뜻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비해 박근혜는 대구를 찾아가 무엇이라 했는지 궁금하다. 멜리나는 그녀의 경력에 걸맞게 그리스 민주정부의 문화상으로(제1차 1981~1989, 제2차 1993~1994) 재직하며 자유주의적인 문화상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박근혜는 멜리나 메르쿠리와는 태생이 다르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는 문화인 블랙리스트를 만들게 하였고, 말로만 ‘창조경제’라면서 가장 비창조 경제정책을 폈으며 문화정책도 독재시대로의 회귀였다.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정신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 망쳐 놓았다. 이런 박근혜를 위해서 태극기를 흔들며 데모를 한다고 그 행동이 애국일까? 악의 세력을 부추기며 언어도단의 말을 뱉어내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행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박근혜는 제발 국론분열의 책임을 지고 하루 빨리 퇴임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교육부장관과 문체부장관을 한 사람들은 멜리나 메르쿠리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하기야 시궁창 속에 발을 담그면 아무리 흰 발이라도 검게 보이는 법이다. 박근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악의 편에 서도록 선동을 한 것은 오래오래 역사에 남으리라.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아테네와 우리나라 군사정권의 본거지인 대구, 사람은 태생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는 그리스 군사정권에 맞서 투쟁한 저 여걸과 비견되는 여성 정치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데도 악의 세력에 편들라는 말을 주저없이 하는 이 개명시대의 정치지도자들을 우리는 경계하고 경멸해야 한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광장,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밝혀진 백만의 촛불, 그리고 태극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청 광장의 군중, 무엇이 민주주의며 애국인가! 나라를 분탕질 쳐 놓고도 애국이라 하는 그런 사이비 애국을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만약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광화문 광장에 박근혜와 멜리나 메르쿠리를 나란히 세워 놓는다면 두 사람의 표정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정의는 이긴다고 말하지만 어떤 경우 정의는 힘이 약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는 반드시 불의를 이겨낼 것이란 신념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멜리나 메르쿠리, 너무나 존경스러운 여배우다. 하늘이여, 광화문 광장이여, 민주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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