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31) 빛고을서각회 오은철 선생
남도의 멋을 찾아서(31) 빛고을서각회 오은철 선생
  • 박창배 기자
  • 승인 2017.03.01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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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듯 하면서 넘치지 않게
▲ 현대서각을 전문으로 하는 빛고을서각회 오은철 선생

옛 정자에는 다양한 현판들이 걸려 있다. 현판에는 풍경에 대한 시도 있고, 정자의 이름에 대한 유래도 새겨져 있다. 고전서각은 나무에 글자만 새겼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 서각을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을 한다. 현대서각을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빛고을서각회의 오은철 선생을 만나보았다.

오은철선생은 빛고을서각회가 2002년 창립되면서 다음해인 2003년도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됐다. 취미생활겸 퇴직준비로 서예를 해볼 요량으로 학원을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서예학원은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과 맞지가 않았다.

그는 서각하는 지인분의 소개로 서각을 시작하게 됐다. 왠지 나무를 다룬다는 것이 좋았다. 오은철 선생은 “온화한 습성을 가진 나무를 맘껏 만져보고 깍아보기도 하고 파서 현판에 글자를 새기는 일이 힘들지 않게 다가왔다”고 서각에 입문하게된 계기를 설명했다. 소방공무원인 그는 “‘불’과는 멀리해야 할 나무를 접하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서각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몰두하게 된다”고 했다.

▲ '먼저웃자' 오은철 선생이 처음 서각에 입문 했을 때 작품

현대서각이란?

서각이란 나무 판재에 그림이나 글씨 등을 파내는 작업을 말한다. 지금은 그림이나 글씨 뿐만 아니라 사진을 그대로 새기는 작업까지 한다. 서각을 하는 기법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음각과 양각이 있다. 이외에도 음평각, 음양각, 음편각, 2단양각, 2단음편각, 둥근양각 등 다양하게 있다. 이 중에서도 음각이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한다.

서각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한두번 해보고 그만두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은철 선생은 “서각은 지름길이 없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차근차근 파내는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런 저런 서각 기법도 익히게 된다”면서 “음각이 가장 기본이 되는데 음각에 다른 서각 기법들이 다 포함되어 있어 음각만 열심히 해도 다른 기법은 응용동작으로 가능하게 된다”고 했다.

음각은 글자획을 ‘V'자 형태로 파내는 기법을 말한다. 너무 깊이 파내지도 않고 적당한 깊이로 파내는데 보통 획의 굵기 정도로 새긴다고 한다. 반대로 양각은 주어진 판재에 글자획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 여백을 일정한 깊이만큼 파내는 기법을 말한다.

오은철 선생은 현대서각을 한다. 글자를 팽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에 새기는 것은 같지만 고전서각과 현대서각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아크릴물감으로 갖가지 색깔을 덧입히는 것이다. 고전서각은 서각후 글자에 흑색이나 하얀색을 입혔다면 현대서각은 다양한 색으로 표현을 한다.

그리고 양각작업을 하는데 글자를 제외한 면을 파는 방법에 있어서 현대서각은 면과 수직으로 파내는 것이 특징이다. 고전서각은 경사면을 두고 양각 처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서각은 글자나 산수화뿐만 아니라 인물과 풍경, 정물 등 모든 것을 새기고 거기에 색깔을 덧씌우는 작업을 하여 나무의 결도 살리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다.

▲ 조각칼과 망치

조각칼 3종과 망치 3종

다년간 서각을 하다보니 개인공구들도 주인과 함께 세월을 함께한다. 그러나 공구들의 날은 예사롭지 않다. 철물점에서 본인이 직접 날을 구입해 갈고 닦고 손잡이를 만든 조각칼을 사용한다. 서각용으로 나온 일반 조각도는 금방 날이 끊어지기 때문에 본인들이 손수 조각칼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각을 하는데 쓰이는 조각칼은 서각도와 평도, 그리고 넓은 면을 한꺼번에 파내는 끌이 있다. 서각도는 글씨를 팔 때나 글씨면을 따라 새길 때 사용한다. 평도는 글씨를 판 후 옆을 정리할 때 사용하는 조각칼이다. 이런 서각도와 평도도 조그마한 글씨를 파낼 때와 넓은 글씨를 파낼 때 그에 맞는 크기의 조각도를 사용하면 된다. 여러벌의 조각칼을 만들어 놓으면 작업하기는 수월하다. 보통 서고의 획을 파내는 작업을 할 때 쓰이는 창칼은 용도에 따라 대 3자루, 중 3자루, 소 1자루 정도의 칼을 준비하여 칼끝이 부러지면 바꾸어 바로 사용한다.

이런 조각칼을 목공용 망치로 두들기면서 나무를 파낸다.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망치를 두들겨야 하는데 이럴 때 쓰는 망치도 3종류로 나뉜다. 작은 글씨를 새기는데는 작은 망치로 약한 힘으로 두들기고, 큰 면을 파낼때는 큰망치로 끌을 이용해 적당히 힘조절을 하면서 파낸다.

오은철 선생은 “왼손에 조각칼을 들고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글자를 새기는데 조급해 하면 안된다”면서 “빨리 끝낼 요량으로 큰 조각칼과 큰 망치로 파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고 ‘겸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서각을 할 때 너무 힘을 줘서 내리치면 칼끝이 부러지거나 나무판이 부서질 수 있는데 부족했으면 부족했지 넘쳐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힘을 줘 내리쳐서 글자를 더 파내는 것보다 조금씩 봐가면서 파내는 것이 작품을 훼손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매번 구상하면서 망치질

서각을 처음 배울 때 음각부터 배우게 된다. 글씨를 나무에 붙여 그대로 파내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한자한자 파내려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다. 한 자를 새기는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음각을 잘하게 되면 양각도 잘하게 된다. 그리고 좀 더 연습을 하면 섬세하면서도 기교를 부릴 수 있게 된다.

서각에 사용되는 나무는 팽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을 주로 사용한다. 주로 팽나무를 사용하는데 저렴하면서 결이 있더라도 단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양각을 할 때 사용한다. 느티나무는 결이 고와 작품을 만들어 놓으면 나무의 참맛을 느낄 수 있지만 비싸서 쉽게 손이 가는 나무는 아니다.

글을 받아오면 나무에 고정시키고 파내는데 매번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구상을 하게 된다. 이런 형태에는 어떠한 색이 어울릴 것인지, 어떠한 형태의 글자체가 어울릴 것인지를 상상하면서 작업에 들어간다. 종이에 복사된 이미지만을 그대로 따라 파내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할 때마다 구상을 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게 된다.

오은철 선생은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새기면서 그 다음 상황을 구상 해 보는데 상상한대로 작품이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면서 “계속 수정해 가면서 작업을 하는데 생각했던 작품으로 실현이 되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100여점의 서각 작품을 만들어 보았지만 급하게 서두르는 것보다는 시간을 갖고 여유있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광주미술협회 초대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항상 닥쳐서 하는 버릇이 작품활동에도 나타나는데 미술협회에서 주최하는 서예대전이나 미술대전에 출품할 때 미리 준비해 수정하고 다듬어 제출해야 하는데 출품일에 쫓겨 작품을 내다 보니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남도의 멋은

2005년도 광주미술협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한 단계 한 단계 뛰어 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은철 선생은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글자를 새겨야 하고 한 자 한 자 새기면서 너무 넘쳐나지 않고 적당한 힘조절을 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넘쳐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여유를 갖고 약간 부족한 듯 사는 삶도 남도의 멋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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