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는다'는 의미
'곱게 늙는다'는 의미
  •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7.01.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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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실덕은 만회할 길이 없는 법
▲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곱게 늙는다’라는 말에는 육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다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곱게 늙는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3.1운동 33인 중에서 몇 명은 말년에 훼절하여 친일 행각을 벌인 인사들을 꼽을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상당수 지식인이 나이 들어 변절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 왔다. 정말 이러한 사례를 접할 때마다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해방이후 우리의 굴곡진 현대사에서 초년, 중년에는 반듯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노년에 추하게 변모한 사람들을 많이 접해 왔다. 무엇이 그렇게 추하게 늙게 만드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지나친 욕심이 추하게 늙게 한다.

소설을 비롯한 모든 이야기를 포함한 서사물은 시작, 중간,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이 세 부분이 유기체적 조화를 이룰 때 그 이야기가 좋다는 평을 들을 것이다. 실제로 한 편의 소설을 쓸 때 작가는 무척 고심한다. 어떻게 보면 망망대해를 앞에 둔 선원과도 같은 심정으로 작가들은 망설인다. 드디어 결단을 내려 서두를 마무리 짓고나서 가장 분량이 많은 중간 부분을 써 나가게 되겠지만 작가는 어떻게 끝마무리를 할까를 놓고 고심하게 된다.

개연성과 필연성으로 엮어 온 중간 부분을 지나 진정한 필연성으로 끝맺기 위해서 ‘끝’은 이야기의 작가에게 고심에 고심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프랭크 커모드는 「종말론(Sense of Ending)」을 썼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시작(Begining)을 썼다.

현실로 돌아와 추한 마무리를 짓지 않고 곱게 늙는 것은 한 인간의 한 평생의 삶을 잘 마무리한다는 말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몰고 온 우리 사회의 추잡한 이면이 들추어진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야 말로 겉으로는 곱게 늙은 것 같지만 속으로는 온갖 추악한 작태로 점철된 인사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노년의 실덕은 만회할 길이 없는 법이다.

특감이 20일 경 그를 구속 영장 발부를 받아낼 작정이라니 그 노회한 화법 자체가 우리를 구역질나게 한다. 50년 법조 인생이 이번에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그는 1992년에는 소위 ‘초원 복집 사건’, 즉 ‘우리가 남이가’란 말로 지역감정을 조장한 인사이기도 한데 그런 전력을 가진 사람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이고 보니 탄핵소추를 받아 마땅하다. 아마 그는 노년에 감방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생각하면 왠지 쑥스럽고 부끄럽고 울화가 치민다. 그렇게 욕된 삶을 살지 않아도 자기만 올바르고 부지런하다면 세 끼 굶을 일 없으련만 온 세상의 밥상을 자기 것으로 착각한 박근혜, 최순실의 욕심은 그들을 추악한 악마로 변형시켰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최근에 나온 문순태의 「생오지 눈사람」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작가나 작중인물들 대부분이 곱게 늙어가는 사람들이다. 곱게 늙어가는 작가에겐 곱게 늙어 가는 작중인물들만 보일 것이다. 고유명사인 ‘생오지’는 이름에 걸맞은 ‘쌩오지’다. 작가가 곱게 늙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향이 품고 있는 자연의 소박함에서 연유되었을 것이다. 나도 몇 년 전 그의 대하장편소설 「타오르는 강」(전 9권) 출판기념회에 참석차 ‘생오지’를 방문한 적이 있어 소설의 배경이 낯설지 않았다. 

김기춘 같은 권력지향적인 사람은 문순태와 같은 작가를 ‘촌놈’이라고 매도할지 모르겠지만 내겐 김기춘은 굴뚝의 검댕이를 뒤집어쓴 괴물 같이 보이는 반면에 문순태는 초가을 논두렁에 서있는 풍요하고 순박한 농부처럼 보인다.

흔히 100세 인생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노년의 삶이 중요한 이슈다. 그래서 더 욕심부리지 말고 ‘곱게 늙는다’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인생을 마무리 짓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죽음 길도 이웃집 나들이 하듯이 발 가볍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설도 멀지 않았으니 ‘곱게 늙는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기를 덕담으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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