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주류들의 민낯」을 돌아보다
잘못된 「주류들의 민낯」을 돌아보다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7.01.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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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부정부패의 폐해들이 쌓이고 쌓여 폐단의 무더기가 되다보니 국정농단이라는 대형 부조리가 발생했는가 싶은데, 그 출발점이 어디인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인간이 욕망의 존재이고, 그 욕망이 세상에 뒤틀리게 삐져나와 연대를 이루다 보니 악순환의 종자가 되어 인간의 역사와 함께 그 생명력을 키워 왔을지도 모르겠다. 부정부패들의 연대에 의해서 마련되고 축적되는 손쉬운 결실들, 그것들을 나누고 즐기는 조찬의 즐거움은 만찬의 풍요로움까지 예단할 수 있어, 부정부패의 악순환은 그 장구한 생명력을 갖고 더욱 번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가? 더구나 한반도에 있어서는 공동체의 안전을 강대국의 힘에 의탁하여 보장받거나 그 길항관계의 틈새에서 이루어 왔던 까닭으로, 공동체 안에서의 경쟁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도토리 키재기’의 이전투구에 익숙해 왔던 것은 아닐까?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투입될 에너지를 내부경쟁을 위해서 사용할 때, 그 치열함의 극치를 산소불꽃의 작열로 상상해 봄직도 하다. 내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공동체의 안전을 빙자한 외부역량을 도입하는 약삭빠른 경쟁집단도 가능하게 된다.

승자독식의 양양한 역사 지평을 눈 시리게 보아 온 우리들이다. 우리가 아닌 타인의 시선을 빌려 우리들을 보고 특히, 조선시대 주류들의 민낯을 보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당시에 고령인 63세의 나이로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을 답사했다. 그는 한국을 정확하게 연구하여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이 시기 한국에 있었던 모든 유럽인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가 답사한 시기는 청일전쟁이 있었고 아관파천이 있어서 한국의 역사가 숨가쁘게 돌아가던 시기였다. 그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맨 처음 만난 것은 가난과 불결함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그는 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체념한다. 그가 더욱 절망한 것은 상류사회의 사치와 방탕이었다. 단양의 어느 토호 집에서 목격한 것은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마님이었고, 남편은 스카치위스키와 프랑스제 샴페인과 꼬냑을 두루 갖춘 채 영국제 시거를 물고 있었다. 집 안은 수단제 카페트를 깔고 벽에는 프랑스제 시계와 독일제 거울이 걸려있었고 탁자는 미국제였다. 그가 족히 절망함직한 한국 주류들의 민낯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시베리아 한인촌을 방문하고 전혀 다른 인상을 갖는다. 이곳의 한인들은 경제적으로 유복하고 검소하고 근면하며 인성도 착하기 그지없었다. 똑같은 한국인인데 국내와 해외에서 사는 모습들이 너무나 달랐다. 바로 귤과 탱자의 차이였다. 그가 얻었던 결론은, 조선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노동의욕이 낮고 생산성이 낮은 탓이었는데, 그것은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 때문이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체념이 그들을 가난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노동은 천형이었고 저주였고 관리는 기생충이었다. 자신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절망으로 한국인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무당의 주술에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은 역시 정치였다. 그의 진단으로는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하고 왕실의 전횡을 막기 위해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꿔야 했다.

1897년 서울의 도시 정비 사업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1894년도에는 있었을 법한 특징적인 빈민촌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진다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이었다. 그가 방문한 학교들에서는 독특한 열기가 군사적인 광기와 더불어 일어나고 있었다.

촛불혁명의 자발성이 본디 우리 국민성 안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임을 새삼 확인한다. 잘살아 보자고 독려했던 쿠데타정권의 채근에도 불평보다는 미래의 희망으로, 열기와 광기로 버텨냈던 것도 본디 우리공동체 안에 또아리를 틀어 왔던 ‘두레정신’같은 것 이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벅차다. 엄동에도 불구하고 천만을 넘었던 촛불들의 동력이 그렇게도 분출될 수 있었음을 상기하니, 민의를 기만하고 억압했던 권력들에 대한 미움이 치솟는다.

그런데 비숍 여사가 목격한 한국의 신식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급료를 많이 받는 군인들이었는데 자기 나라의 의병 토벌에나 동원되었지 망해가는 나라를 지탱하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국가 권력이 백성들의 자발성을 굴절시키고 왜곡한 결과였다. 과거는 지나갔고 끝나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옛날 주류의 민낯은 문드러지고 새 시대의 부패하지 않을 새얼굴들이 호호탕탕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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