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뒷모습
  •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6.11.2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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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앞모습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뒷모습도 중요하다. 외국 어느 사진작가가 쓴 책에 『뒷모습』이란 것이 있는데, 그 책 속의 사진에 나타난 뒷모습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12권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모험 중에 달콤한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리는 세이렌 자매들이 나오는데 오디세우스는 아르곤호의 선원들을 밀랍으로 귀를 막아 세이렌 자매의 유혹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토요일마다 촛불 데모의 함성을 듣지 않기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밀랍으로 귀를 막았는가. 100만의 촛불을, 대군중의 촛불 행진을 내려다 본다면 그 때의 박근혜 대통령의 뒷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자못 궁금하다.

요즈음 TV에 나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앞 얼굴엔 혼이 빠진듯하다. 더욱이 클로즈업된 화면을 보면 눈동자에 생기가 보이지 않는다.이럴 때는 훌훌 털어버리고 청와대에서 나와 버려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용기도 없으니 그저 버티는 모양인데 버틴다고 버텨질 일이 아니다.

지난 11월 21일 발표된 최순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만 보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과 공동 정범으로 지목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음 조각이 다 녹아내리기 전에 국민에게 큰 절로 사죄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리고 무대 뒤로 사라져 가는 당당한 뒷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물러 날수 없다는 궁색한 논리로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그대를 뽑아준 국민 95%는 그대가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물러나는 것도 시의 적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승사자에게 육모방망이로 얻어맞아 가면서 개 끌려가듯 물러난다면 그 뒷모습이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나에겐 보인다, 수많은 군중에게 등떠밀려 쫒겨나는 그대의 뒷모습이.

이 때가 되면 의연함이니 인격이니 이런 모든 것들은 한갖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이미 그대는 파멸의 기차를 탄 셈이다.역사가 어김없이 가듯 그대는 파멸의 종착역으로 바퀴가 굴러간다.

더 이상 그대는 대통령직에 연연하지 말라. 이번 토요일(11월 26일)에는 경향 각지에서 150만의 촛불 군중 데모가 열린다고 한다. 옛부터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했다. 그대 뭇사람의 뜻을 아는가. 그대 화려한 가면을 쓰고 청와대에 입성했지만 그 가면을 벗어버린 민낯은 뿔달린 도깨비보다도 못한 흉물이다.

그대여 그대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라. 아무리 좋은 성형 주사를 맞았다 하더라도 그대의 얼굴은 이미 괴물인 것을. 이제 남은 길은 깡충깡충 뛰며 소풍가는 어린 아이처럼 물러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이철호 시인은 저승길은 논두렁 하나 넘는 것이라고 읊었다. 이 시구는 홀가분한 죽음길을 뜻하고 있다.

인생이란 이런 것. 가을 바람 일면 나뭇잎은 낙엽되어 떨어지는 법. 천하의 가을은 오동잎 한 닢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법.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 마땅하건만 그대는 대통령이라는 알량한 담장안에 숨어 지낸다고 면책이 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가.

대통령직은 긴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그대는 군중에 등떠밀려서는 도저히 물러날 수 없다고 몽니를 부리는데 떠밀 때 떠나라. 그러지 않으면 더 추악한 모습으로 쫒겨날 것이다..

그대가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것은 의연하게 물러나 마지막 뒷모습을 오래오래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대의 귀에서 밀랍을 떼어버리고 군중의 노한 합창을 들으라.

그대는 눈을 가린 머리 띠를 풀고 광명천지를 바라 보라. 11월 26일 밤 청와대로 행진하는 촛불과 성난 군중의 함성을 보고 들으라. 이제 무대의 조명은 꺼지고 그대의 퇴장만이 남았다.

당당한 퇴장은 씩씩한 등장보다 우리를 감동시킨다. 11월이 다 가기 전에 우리에게 당당히 퇴장하는 뒷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그대가 걸어나간다. 축처진 어깨, 고개, 숙인 머리, 누구는 연민을 느낄 줄 모르나, 나는 ‘자업자득’이란 말이 이럴때 쓰라고 마련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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