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니…
자연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7.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년전 혼탁한 도심을 뒤로 하고 자연 속에 묻힌 최하림(62)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풍경 뒤의 풍경'(문학과지성사)을 내놓았다.
시인이 광주를 떠나 충북 영동 산골 새 거처로 옮긴 후 펴낸 두 번째 시집. 세상살이에서 흐르는 시간의 흔적들이 풍경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시집 제목도 '풍경 뒤의 풍경'일까. 자연으로 돌아간 시인의 눈에 풍경은 주로 사람의 풍경으로 묘사된다.

'나는 다리 위에 서 있다 새들이 멀리 날아가고/나의 아이들도 서울로 인천으로 보스턴으로 떠나버리고/없다 더 이상 세상은 사랑의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나는/밤처럼 울음을 삼키고 세상을 보고 있다'('나는 다리 위에 있다' 중).
도심의 오염을 훌훌 털고 자연이라는 들판에서 바라본 세상은 고독 그 자체다. 이를 이겨내려고 시인은 자연과 벗한다.

'억새풀들이 그들의 소리로 왁자지껄 떠들다가/한 지평선에서 그림자로 눕는 저녁,/나는 옷 벗고 살 벗고 생각들도 벗어버리고/찬 마루에 등을 대고 눕는다 뒷마당에서는/쓰르라미 같은 것들이 발끝까지 젖어서/쓰르르 쓰르르 울고 있다 감각은/끝을 모르고 흘러간다고 할 수밖에/없다'('억새풀들이 그들의 소리로' 전문).

시간 속의 소리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로 목격되기도 하지만 시인은 금방 체념하고 담담해진다. 아니 관조한다. '왜 아이들은 우리를 떠나 그들의 길을 저토록 바삐/갑니까 저는 찾아갈 집도 골짝도 없습니다/저는 혼자입니다/저는 떨고 있습니다'('길 위에서' 중). '나는 서너 번 기침을 하고 햇빛 속으로 찰랑찰랑 흘러/가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오늘 같은 날에는 덤벙대지 말고/조용히, 시를 생각하며,/시를/기다려야겠다'('햇빛 한 그릇' 중).

'여섯번째 시집을 냈다. 한결 몸이 가볍고 부끄럽다.' 시인은 책머리를 이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가벼움과 부끄러움으로 함축되는 의미는 시집을 끝까지 음미해야 알 것 같다. 시인이, 연극인이, 무용가가, 자신의 무대를 내려오면서 생각하는 여느 의미를 넘어서야 할 것 같다. 거추장스런 도시의 겉치레를 떨쳐 버리고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응시하는 시간들에서 그 풍경들이 편편이 보여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