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애원성의 내력(4)
슬픈 애원성의 내력(4)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10.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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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권과 잘못된 전쟁과 그 책임
▲ 이홍길 고문

〈강도몽유록〉에 등장하는 여자 원혼들은 그녀들의 가장인 남정네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면서도 당시의 권력과 임금에 대한 원망은 드러내지 않았다. 전란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임금과 정권에 있을 것인데, 집안의 남정네들만 원망하고 임금을 탓하는 애원성은 없다. 그들을 자결하게 만든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의 친명 반후금의 대외정책 때문에 초래된 전란으로 반정만 없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대명 의리에 집착하여 자기 정권의 정체성만을 도모, 두 번의 대외전쟁과 한 번의 반란 전쟁을 겪었던 것이다. 그 전쟁이 가져다 준 참화는 그야말로 시산혈해의 생지옥이었다. 쿠데타정권의 명분 보위의 전쟁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반정 승리의 그날에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전란의 단서가 된 쿠데타의 시점이 임진왜란의 전후복구 과정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인조반정의 당파적 분파성은 마땅히 준열하게 지탄받았어야 했다. 몽유록 여인들의 애원성이 그러하듯 전란의 책임을 묻는 조야의 어떤 정치세력도 없었다.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현대사와 오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망국과 분단과 독재에 대한 치열하고 실효성 있는 책임 추궁은 없는 채 그것들의 상흔과 후유증은 오늘에도 맥맥하다. 근래에는 서민들의 민불요생의 민생파탄마저 예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 추궁의 민성은 들리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도 백성들을 농락하고 순치해 내는 기득권세력들의 탁월한 기량에 의해 보통사람들의 민권․민생의식은 위축되고 나약함과 비겁함을 생명력으로 치환하여 연명의 유전자를 비축하고 있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오늘, 비겁해도 좋다, 나약해도 좋다. 은근과 끈기는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국민성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민주화, 인간화의 골든타임을 놓쳐 버리는 장본인이 우리들이 되어가고 있다. 늦었더라도 퇴색됐더라도 다시 일어나 민의의 깃발을 세워야 한다.

나의 행복, 나의 생명은 나의 책임이듯 우리의 행복과 생명도 마찬가지인데, 더구나 시대는 인권지상의 민주주의 시대로 이제 신민은 없고 시민만 독야청청한 21세기이다. 사약을 받으면서도 임금에게 충성서약을 했던 옛날, 외세를 물리치고 광제 창생하겠다고 일어선 동학혁명의 주체 세력들도 감히 왕권을 부정하지 못하고 국왕 주변의 간신들을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던 지난 날,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에 맞섰던 세력들도 망명하는 대통령을 연민하면서 그 주변의 부정부패 세력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전시대의 아직 걷히지 않은 우리들의 미숙한 온정주의도 탓해야 마땅할 것이다.

사람을 해치는 미친개는 잡아야 한다. 권력과 권력자를 향한 청산하지 못한 신민의식으로 부르는 사미인곡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당파, 패거리의 연대의식은 지금까지도 잔존해서 우리들의 삶을 훼손하고 공동체의 마땅한 진로를 훼방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공화국의 토대와 위신을 부식하게 된다. 우리들이 방심하는 사이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몇 번에 걸친 전쟁의 참화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세력들과 그 주변에서 마름으로, 졸개로, 권력 가리개로 살아온 비겁한 역사가 부끄러운 것으로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정형이 되어, 왕조시대의 신민의식이 청산되지 못한 채 공화국의 요해처를 부식하는 세균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안녕과 행복을 유린한 세력과 그 수행자들에게 과감하게 책임을 물을 줄 아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전시대의 유산인 잘못된 인정과 자신의 코앞의 이익과 안전만 확보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으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망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옛 여인들의 슬픈 애원성의 내력은 잘못된 권력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패권의식에 있었고, 갖가지 연유로 이를 방조한 백성들의 온정에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따사로운 인정사회가 항구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책임을 다하는 리더와 책임을 묻는 구성원들의 조합에 의해서 달성된다고 하는 것이 불변하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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