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울고, 산이 춤춘다
산이 울고, 산이 춤춘다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6.09.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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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은 물론 조국의 해방일이고 광복일을 말한다. 이 시에서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춤추고󰡑라고 시인은 읊고 있다. 나는 일제 강점기 동안 발표된 시 중에서 가장 강렬한 저항의식을 표현한 시로 이 시를 꼽는다. 지금 읽어 보아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든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대상인 자연물을 수없이 달리 표현한다. 이철균 시인은 「영아」라는 시에서 산을 어머니가 자식 두엇을 손잡고 나온 것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저 푸른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고픈 심정을 그 누군가 눈짓을 보내자 있는 그 자리에 뚝 멈추고 만다. 시인은 이것을󰡐잔인한 눈짓󰡑이라고 읊고 있다.

나는 1972년인가 어떤 문예지에 이 시가 발표되었을 때 읽고서 한국적 형이상학의 시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아뿔사 평소 친하게 지냈던 이철균 시인에게 「영아」에 나오는 산이 어떤 산이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 산은 우리나라에 숱하게 있으니까 구태여 물어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칠십 평생 독신으로 살았기에 산을 여인으로 비유한 그 여인은 분명 그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그 산은 무등산이었으면 했다. 반달덩이 같고 상중하봉을 거느린 산은 무등산이 제격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청명한 가을날, 그때는 공해가 없던 시절이라 송정리에서 바라 본 무등산이 유난히 가깝게 보였다. 그래서 무등산이 마치 어린아이 손잡고 가을 나들이 온 30대의 여인처럼 내 눈에 보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철균의 「영아」에 나오는 산은 무등산일거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1994년 7월 4일 나는 장춘 요녕대박물관의 호의로 한중 고대역사와 신화라는 세미나를 마치고 집안에 처음으로 갔었다. 광개토대왕능과 장수왕릉,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를 찾았고 환도산성도 올라가 보았다. 압록강을 모터보트로 1시간 가량 유람했다. 그런데 그 보트가 북한 쪽으로 가깝게 가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았지만 북한과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강수는 공유한다는 것이고 압록강 하구의 모든 섬은 북한에 귀속된다는 것도 알았다. 7월 6일 연길에서 백두산을 등정하려 했는데 백두산 일대에 내린 폭우로 길이 파괴되어 무척 고생해가며 백두산에 오른 시간이 오후 6시인지라 백두산 천지를 못 보면 어쩌나 마음 졸였는데 선녀의 큰 우선으로 구름을 날려버린 듯 천지가 환히 내려다 보였다. 그날 밤 지금은 헐려 없어진 백두산 산장에서 묵었다. 다행인지 어떤지 우리가 묵은 방은 주은래 수상도 묵었고 등소평도 묵었던 방이라는 산장 주인의 설명을 듣고나니 한편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그날 밤은 무척 하늘이 맑아서 문자 그대로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고 어슴프레한 별빛 속에서 산이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엄청난 천지의 물을 이고 있는 백두산이기에 내가 잘못들은 이명이거나 환청이라고 치부했지만 분명히 백두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귀국해서 뉴스를 들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날이 7월 6일이었다니 백두산이 운 것은 그의 사망을 애도한 것이었던가!

나는 6.25 때 칠보 운암댐이 3일간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산하가 운다는 것은 분명 국가적으로 좋지 않은 징조인가 보다. 그렇다면 1980년 5월 무등산은 울었을까? 나는 분명히 오래오래 발을 뻗고 통곡했으리라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언제 무등산은 덩실덩실 춤을 출것인가. 어떤 사람은 1997년 12월 18일 김대증 대통령 당선 때 춤을 추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고개를 젓는다. 무등산이 춤출 날은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되는 날이라고 기원한다. 그 때 무등산은 덩실덩실 춤추다가 억겁을 발 묶여 있던 그 자리를 박차고 창공을 향하여 너울너울 날아갈 것이라 상상해본다. 무등산은 어떤 때는 가을 나들이 나온 세 모자로 보이기도 하고 민족통일의 그날 우주로 날아 오르는 세 마리 대붕으로도 보인다. 산이 우는 소리를 듣고, 산이 춤추는 것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은 오직 나의 상상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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