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길에서 듣는 옛 여인들의 애원성(3)
꿈길에서 듣는 옛 여인들의 애원성(3)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9.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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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강도(江都)몽유록」의 독후감을 쓰고자 하는데,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죽은 뭍 여자 혼령들의 애원성이 너무도 절절해서 몽유의 노닌다는 말이 외람되기 그지없다. 북핵과 사드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오늘이 차라리 꿈이면 좋으련만, 전운이 감도는 엄연한 현실이어서,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옛 상처마저 예사롭지 않아 병자호란에서 죽은 여인들의 하소연과 질타에 가슴 조린다.

전쟁은 권력을 가진 정치가들의 행위이고 남정네들의 행위인데, 그 치명적 결과는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북핵도, 사드도 민생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인데 한줌도 안 되는 정치꾼들이 결정, 그냥 백성인 우리들을 전전긍긍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한다. 병자호란도 마찬가지로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서인세력들은 그들의 잘못된 정체성을 확충하고자 친명정책을 펼쳐 국가를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전쟁은 공동체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하는 것으로 국운을 거는 행위인데, “태양이 하나이듯 대명 천자 한 분 뿐”이라는 사대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 쿠데타정권은 준비 없는 전쟁을 감수했던 것이다. 잘못 일어난 병자호란의 참상에 골몰하다 보니 행여 사드는 잘못된 정권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의혹마저 인다.

병자년 호란으로 강도(江都)의 참상은 더욱 처절하여 시혈은 냇물처럼 흘렀고 백골은 산더미처럼 쌓였으나 장사 지낼 사람이 없었는데, 적멸사의 청허선사만이 이를 슬프게 여겨 몸소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려고 하였다. 선사는 움막을 지어 생활하며 법사를 베푸는 가운데 꿈을 꾸었는데, 일단의 부녀자들이 열을 지어 앉아서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의 참상은 목불인견으로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는데, 그들의 애원성은 한결같이 남성들에 대한 지탄이었다. 한 여자가 울먹거리며 전란의 참상을 말하는데, “구태여 그 이유를 따지자면 바로 우리 낭군의 죄이겠지요. 태보의 높은 지위며 체부의 중책을 진 사람이 공론을 무시한 소치로, 사정에 이끌려 편벽되게도 강도의 중책을 자식에게 맡겼지요. 자식놈은 중책을 잊고 밤낮 술과 계집에 파묻혀 마음껏 향락에 빠졌습니다. 장차 닥쳐올 외적의 침입을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어찌 군무에 힘 쓸 일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하고 말하는데, 다른 부인이 말을 가로챈다. “제 낭군은 자기 재주에 감당하지도 못할 중책을 맡아 오직 천험한 자리를 굳게 믿어 군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이에 밀어닥친 적군을 막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강을 휩쓰는 비바람에 사직이 무너졌고 삼군이 박살났습니다. 상감마마가 성에서 내려오시어 항복하셨습니다.”하고 말하면서 당시의 권력자였던 이민구, 김자점, 심기원 등을 탄핵하였다.

또 한 부인이 내달아 개연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낭군이 상감마마를 가까이 모신 총신으로 한 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 놓아 되놈들을 받아들여 무릎을 꿇고 항복하여 구차하게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이어서 한 부인이 앞섶을 붉은 피로 낭자하게 물들인 채 눈물을 한없이 쏟으며 조용히 말했다. “시아버님의 죄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천은을 입어 강도 유수가 되었습니다. 강도는 중한 땅이라 마땅히 굳게 지킬 것이거늘, 천험만 허황하게 믿은 데다 호병의 날카로운 창검을 무섭게 여겼답니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단잠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지요. 또한 매일 크게 취해 강루에 누워 짐승 같은 욕심만 채웠답니다. 이러니 국가의 존망을 꿈엔들 생각하였겠어요? 그는 원래 물을 다룰 줄 몰라서 험한 풍랑에 키를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연히 수군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적막한 강성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또 풍채가 빼어난 여장부가 나서서 말하길 “다만 제 가슴에 맺혀 천년토록 잊지 못하는 한은 제 낭군 때문입니다. 상감마마가 내리신 옷을 입고 상감마마의 녹을 먹으면서 살아생전에 국은이 막중하였는데 몸이 창황한 즈음에 처해서 인사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살기만을 좋아하고 죽기를 두려워해서 기꺼이 제 종이 되었지요. 이러하니 풍채는 매몰되고 체신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자 혼령들의 질타가 준열한데 하나같이 집안의 남정네들을 향한 것이었다.

우국의 시국담이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의 덫에 걸릴까 두렵다. 우리들은 유신시대의 황당한 긴급조치를 겪은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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