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9)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9)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8.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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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끄집어내는 일, 우리 모두의 몫일 수밖에
▲ 이홍길 고문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시는 다사로움은 혹서는 서늘하게 하고 혹한은 눅지게 할 것인데, 인간사는 그렇게 녹록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한중록」을 쓴 혜경궁 홍씨의 일생도 파란만장해서 지아비 사도세자가 시아버지 영조에 의해서 죽게 되는 것을 겪고, 그의 친정아바지가 아들 정조에 의해서 벼슬살이에서 축출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남편이 죽은 후 혜경궁의 친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형제 정승의 지위를 누리는 최고의 명문가가 되었으나 그의 아들인 정조에 의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더욱 기구한 것은 그의 아들이 죽고 난 뒤에 친정을 위하여 남편 사도세자의 행적을 거짓 증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혜경궁 홍씨 일생의 비극의 배경에는 부자유친의 자별함이 깨어짐을 넘어 천륜의 붕괴가 있었던 것이다.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던 것이다. 이러한 불행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조선시대 당파싸움이라는 권력투쟁과 조선 왕실의 골육상쟁의 트라우마가 친자 처형이라는 비극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삶들과 역사가 권력에 침습되다 보면 역사는 왜곡되고 삶들은 뒤틀어지기 마련이다. 불교 「현우경」에 “과거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현재 너의 모습을 보라. 미래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라”는 대목이 있다.

과거의 우리는 오늘의 우리에 이어져 있고 오늘의 우리는 내일의 우리에 이어져 있다. 오늘의 우리는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오늘의 불만은 어제의 씨앗이 큰 것이고 내일 우리가 맞닥뜨릴 불안은 오늘 우리가 심고 있을 것이다. 곧 그것들은 바로 우리의 운명이 되는데 우리들이 주동적으로 결정하고 조성하지 않았다는데 화가 나고 분노하게 된다.

사도세자의 비극이, 혜경궁 홍씨의 기구한 일생이 영조라는 권력자와 노론, 소론의 권력투쟁이 만든 결과인 것을 아파하면서도 우리의 운명을 권력자들에게 그냥 맡긴 채로 수수방관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가소롭지 않은가?

북핵을 걱정한다, 사드를 걱정한다 하면서 그것이 우리들의 삶을 결정짓는 중심축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가 결정하였는가? 누구를 위한 핵이고 누구를 위한 사드인가 궁금하지도 않은가? 인민공화국이면 인민에게서 권력이 나와야 할 것이고 민주공화국이면 민중에게서 권력이 나와야 할 것인데, 소위 집권자들이 권력을 오로지 한 체, 문양만 인민이고 민주면 그것은 벌써 사이비 공화국이다. 인민권력으로 하자 민주권력으로 하자고 늦게나마 목소리를 높여 주권자의 위상을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언어」라는 정동칼럼을 읽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배치 반대를 ‘불필요한 논쟁’으로 단정 지었다. 국민을 향해 대결하듯 어디 대안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재갈을 물리려는 듯한 표현도 썼다. 반대세력을 불순세력이라고 했다. 불필요한 논쟁을 하다보면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공화국 수장의 언어가 무시무시해서 괴기스러울 정도다. 1755년 영조 31년 2월 4일, 나주 벽서사건이 발생하였다. 나주 객사에 흉서가 걸렸는데, 그 내용은 ‘조정에 간신이 가득해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다는 것’이었다. 범인이 잡혔는데 소론 강경파들이었다. 연루된 사람 중에는 현직 나주 목사도 있었다. 영조는 범인들을 능지처참으로 처벌하였는데, 훗날 그가 죽인 사도세자에게 소론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전하려고 세자를 능지처참의 현장에 직접 데리고 나가 생생히 지켜보도록 하였다. 매일같이 국청 뜰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성문 밖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죄인들의 목이 걸렸다. 죄인을 심문 처벌하는 국청은 달을 넘겨 계속되었고 수많은 관련자들이 죽어나갔다.

광주의 「시민의소리」에 실린 김병욱 교수의 ‘판도라의 상자’를 읽는다. 제우스의 명령으로 헤파이토스가 만든 판도라는 말 잘하고 요염하고 아름다우나 사악함을 감춘 여인이었다. 판도라는 인간을 불행하게 할 재앙을 가득 담은 상자를 에피메테우스 앞에서 뚜껑을 열어 온갖 재앙이 퍼지게 했는데, 오직 하나 ‘희망’이라는 좋은 선물이 바닥에 있었지만 판도라는 제우스의 명령으로 ‘희망’이 튀어나오기 전에 뚜껑을 닫아버렸다. 김병욱 교수는 현 정권이 거짓말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음을 적시하면서,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는 모순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누가 판도라 상자의 희망을 끄집어 낼 것인가? 힘들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몫일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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