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신과 한(恨)
호남정신과 한(恨)
  • 이황 만암주역학연구소 소장
  • 승인 2016.07.2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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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 만암주역학연구소 소장

20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한 『‘광주다움’을 찾아서』 ‘제2회 광주정신포럼’을 참관하고 느낀 소회를 피력해 보려 한다.

우선 ‘광주정신’을 찾아보려는 거대 담론을 준비한 주최 측에 무한한 경의를 보낸다. 광주정신은 분명히 있으며 오랜 세월동안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리 드러나고 계승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토론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역사성의 결여라 할 수 있다. 역사 없이 어찌 정신을 논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논의라면 단호히 말하지만 중단해야 한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체(體, 근본)를 버리고 용(用, 응용)만 취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큰 오류를 남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광주정신의 왜곡이고 선현들에 대한 모욕임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또 무엇보다 ‘광주정신’이 아니라 ‘호남정신’이라 해야 함이 더 적확할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하나의 예로 5·18정신을 말한다면 그냥 ‘대동세상’ 쯤으로 계승발전을 논하고 얘기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거다. 그러나 한 발제자의 말대로 ‘광주정신’을 5·18정신으로만 규정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두 분의 발제자와 세분의 토론자들의 핵심어는 ‘대동세계’, ‘의향’, ‘예향’, ‘한’ 정도로 집약 되는 듯싶다. 우리는 늘 ‘한’이라 하면 ‘못난 놈의 한풀이’ 정도로 폄하되고 있는데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한다. 여기서의 한은 인간(주로 지성인)의 자기 수양적 숭고한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것이다. 특히 호남 지성인들의 한은 그렇다. 물론 조선 민중의 한은 오랫동안 언급되어 왔다. 여기서의 한은 다층적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통치이데올로기로 작동한 조선유학은 두 부류로 나타난다. 하나는 지배권력의 수단으로 치밀하게 작동하였고, 이는 가통 · 학통 · 대통이라는 3통으로 존재하였다. 다른 하나는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 즉 이름에 걸맞은 ‘○○다움’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직분과 신분에 맞는 본연의 군자적 자세를 표방한 도의(道義)적 실천을 말한다. 권력이 부당하게 작동되는 쪽에 서서 역할을 하거나 반대로 이에 저항하는 쪽에서 자기 수양적 성찰을 통해서 작동하거나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2500년 전의 공자도 그 시대상황으로 보면 비록 온건적이긴 하였으나 좌파였다. 기존질서에 저항하다 14년의 망명생활을 하였다. 송대(宋代) 신유학에 와서도 정이천이나 주자 모두 거듭되는 탄압을 받으며 권력자들로부터 위학(僞學)으로 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조선의 호남 지성인들은 주로 저항하는 쪽에 서서 그 정주학의 ‘자기 수양적 성찰’을 통해 한을 표출하였고, 조선이란 나라는 세종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중의 삶은 고통 그것이었다. 여기에서 큰 혼란기가 아닐 때에는 호남 지성인들에게 그것은 문화예술로 승화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것을 우리는 예향이라고 한다. 또 그것이 민중들의 극심한 고통으로 이어져 혼란상황에 이르면, 즉 안으로 극도의 가렴주구라던지, 횡포에 이르거나 외세에 의한 위난의 시대에 이르면 분연히 일어나는 의로운 행동과 결사로 나타나는 것을 의향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예향이나 의향의 뿌리는 고고하고 순결한 한에서 온 것이다. 그 한이 해방이후 비호남의 치밀한 공작과 우리 스스로의 자기부정과 자기모순이 중첩되어서 ‘한풀이’라는 저급한 이데올로기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한은 그런 못 살고 찌들리고 고통 받음의 상징으로서의 한만이 절대로 아니었다.

매우 숭고한 도학적(道學的)인 의리사상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느 지역보다 앞선 희생과 성찰로 민족을 이끈 그때그때의 시대정신이었다. 호남정신의 대표적인 특질 중의 하나는 다른 여느 지역과는 다르게 절의의 강조와 의리적, 실천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제 그 호남정신을 찾아내고 개념을 정립함에 있어 그 용어의 근원과 사상적 철학적 성찰에서부터 논의를 해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호남정신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1. 조선시대까지, 2. 일제 식민시대까지, 3. 해방이후, 4. 5·18민주화운동 이후 오늘까지라는 시대구분 속에서 호남정신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런 결과물이 나온 다음에 호남정신은 올바르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위대한 민족정신과 시대정신을 한 번도 외면하지 않았던 호남정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이 시대 지성인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 오늘 가장 많이 언급된 5·18정신은 아직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질 않는가?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고 줄기, 꽃, 그리고 열매가 있기 마련이다. 5·18은 아직은 꽃이다. 그 열매야말로 ‘호남정신’이 아니겠는가?

한은 그렇게 우리의 DNA속에 살아 숨 쉬며 호남을 호남답게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토론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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