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7.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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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학’은 시의 이론이라고 넘겨짚어 이해하려 한다. ‘시학’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비극론’이다. 좀더 나아가서 말한다면 일반 예술론이라고 할 수 있다. ‘시학’의 분량은 총 26장에 우리의 신국판으로 인쇄할 때 60여 쪽에 불과한 소책자이다. 이 책은 BC 347~322년 사이에 쓰여진 것이고 그의 사숙 ‘리세움’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강의한 강의 노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플라톤이 그의 사숙 ‘아카데미’를 친조카에게 물려주자 아마 분기탱천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리세움을 세웠다. 천하(당시 지중해권)의 영재들이 리세움으로 몰려들었고 그 영재들에게 예술 일반론과 비극(비극도 운문으로 쓰여졌음)론에 대한 강의 수고가 ‘시학’이다. 천하의 영재들이었던 제자들이었기에 자세한 부연 설명이 필요없었겠지만 범재인 우리들에겐 자세한 주석이 필요한 것이다. 매우 역설적이다. 가령 엘스(Else) 같은 사람은 수천 쪽에 달하는 해설서와 논문을 썼다. 평범하나 우리 문학도를 위해 O. B. 하디슨 2세가 주석한 ‘문학도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레온 골든 영역, O. B. 하디슨 2세 해설, 최상규 역, 예림기획, 2002) 이 책의 특징은 문학도를 위한 주석에 있다. 나도 몇 권의‘시학’을 읽어 봤지만 이 책을 능가할 책이 없다. 분명 좋은 책이 있는데 병폐는 읽지 않는 데 있다. 원전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란 꼴불견이다.

1972년 후배의 석사학위 심사광경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담한 심정으로 기억된다. 당시 후배의 논문은 ‘1930년대 한국 단편소설의 플롯 유형론’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플롯론을 원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한 심사위원이 “잠깐 자네는 왜 소설론을 발표하면서 ‘시학’을 원용하는가”라고 발표를 중단시키고 질문 아닌 훈계조의 논평을 한 것이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분명히 ‘시학’을 읽지 않았다. 그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내가 1974년 충남대 국문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자 원하는 학생에 한하여 앞의 그 책을 복사도 아닌 타이핑해서 방과시간에 강독하여 다 마친 적이 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희곡론 강의에 적당한 강사가 없어서 내가 한 학기 강의를 맡았었는데 ‘시학’은 비극론이고 문학도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기에 460여 쪽에 달하는 ‘문학도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속속들이 강의한 적이 있다.

서양의 문학이론은 이 책에서 비롯하였고 미국의 시카고학파들은 이 ‘시학’을 공동으로 읽어나가면서 그들의 비평론을 정립했다. 나도 그들의 이론을 좋아했기에 일찍부터 ‘시학’을 철저히 읽었는데 나의 문학이론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소설론에는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론을 소설에 적용한 것이다.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정제된 그리스 비극의 플롯을 전혀 성격이 다른 소설의 플롯에 적용한 것은 거인에게 어린이 색동옷을 입히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쉽게 말하자면 소설은 소설이고 비극은 비극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문학이론가인 미하일 바흐찐은 이러한 모순을 꿰뚫어보았다. 1930년대에 발표한 소설론들은 당대 영미권의 이론과 비교해 볼 때 현격한 수준차를 보여준다. 1970년대 후반부터 바흐찐이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하여 가위 ‘바흐찐 기업’이라고 불릴 만큼 선풍적 선호도를 점하고 있다.

참 어떤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은 나에게 문학에 대한 안내서이자 내 사고의 출발점이 되었다. 왜 우리는 고전을 읽는가? 고전은 모든 시대의 비평의 세례를 받고서도 꿋꿋하게 버텨낸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최근에 팽귄클래식 코리아에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권한다.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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