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7)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7)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7.0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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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시고 싶은 것은 복잡하면서도 삭막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자유롭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음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짜증나는 요즘 한국의 정치 경제 기류는 망각의 청심환이라도 찾고 싶다.

사람들은 삶이 고될 때 더욱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쫑알거렸던 지난 시절의 추억이 그립고 어머니의 구수한 젖내음에 젖어 그냥 좋기만 했던 기억들도 소중하기만 하다. 그런데 소박하기만 한 아들들의 소망이 항상 모두에게 가능하기만 한 것은 아닌성싶다. 육친간에 모자간에 자연스러운 인정도 권력과 금력이라는 인간의 탐욕적 조건들이 작동하게 되면, 성현들의 높은 가르침마저도 무색해져 버리고 만다.

효도의 덕성을 높이 평가하기 전에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정조와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마음고생들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영조에 의해 그의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게 되었을 때는 노론 집권시기였고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은 집정대신이었다. 훗날의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고 홍봉한의 외손자이고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었다. 열 한 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죽음의 현장을 경험한 정조는 14년간의 은인자중 끝에 왕이 되는 날, 그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노론 대신들에게 선포하였다. 그것은 그의 외조부로 대표되는 세력을 향한 공격의 예광탄이었다. 그런데 사도세자의 아내이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는 친정과 아버지를 끝없이 사랑한 효성스러운 딸이었다. 아들과 어머니의 효행은 그 방향을 달리하면서 갈등이 내재하게 되지만, 그것을 적나라하게 표출할 수 없는 시대적 제약 또한 엄연하였다.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자 하는 아들이지만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다하는 임금이어야 했고, 친정을 위한 막강한 방패막이고 싶어도 왕권지상의 시대에 왕인 아들의 뜻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어머니였다.

아들의 효행은 사도세자 능묘의 이장과 화성 축성으로 나타나고 어머니의 효행은 친정과 아버지를 위한 치열한 글쓰기, 곧 한중록으로 나타났다. 홍봉한이 사도세자를 죽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지 않았더라면 효행의 갈림길에서 오는 갈등은 없었겠지만, 당시 그것은 권력행위였고 집정 노론의 생존방식이었다. 아버지 영조가 아들을 죽이려 할 때 신하들도, 혜경궁 홍씨도, 그의 친어머니와 장인도 지켜만 보고 있는 채 자결을 명하는 영조 앞에 기막힌 원통함으로 뼈마디까지 울부짖던 사도세자가 엎드려 있을 때, 그 살벌하고 험악한 자리에 정조가 나서서 ‘아비를 살려주소서.’ 하고 거듭 애원하였다. 반면 혜경궁은 남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후 아들을 핑계로 친정집으로 가기에 이른 뒤 정조가 석고대죄 할 주변의 권고도 무시하였다.

한중록은 조선의 산문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로 명문이나 사도세자의 구명 욕구는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영조의 지엄한 분부에 거스르지 않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보다 끈질기게 반복되는 것은 친정아버지와 친정에 대한 변호였다. 사건 당일 친정에 귀가한 딸은 「당신 또한 어찌 살 뜻이 계시리오마는, 내 뜻과 같아서 망극 중 오로지 세손을 보호하려 하시는 정성만 계셔 경보궁(사도세자)을 따르시지 못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세손을 보호하여 종사를 보전하신 충성은 천지신명에 물어봐도 분명한지라」 하고 그의 아버지의 공을 높이고 있었다. 다음날 아버지께서 나와 세손을 붙들어 통곡하고 위로하시되 「이 뜻이 옳으니 세손이 나중에 성현이 되시면 성은을 갚는 것이고 낳으신 아버님께도 효도가 되시리이라」하고 대궐로 들어감을 말하였다. 혜경궁은 자신의 심중을 밝혀 ‘처음부터 그리되신 것이 섧지 점점 그 지경에 이르신 것을 어찌하리오. 내 조금도 마음에 머금은 바가 없으니 감히 이렇다 원망도 아니하였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망극한 일을 격고 차마 어찌 살리오. 자결하고자 하였으나 못하니라. 나마져 죽으면 열한 살 세손에게 첩첩한 아픔을 끼치는 것이라’하고 다짐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자신과 친정아버지가 지켜서 임금이 된 아들이 친정을 징벌하는 것을 격게 된 혜경궁의 마음의 상처도 크겠지만, 자식 원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면 전통시대의 왕가의 부덕을 실감할 수 있겠다.

모자일망정 효행의 길이 다름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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