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5)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5)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6.08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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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모든 어머니들은 아내였거나 아내이다. 아내라는 지위가 보장되지 않은 어머니도 어느 남자의 짝이었거나 짝이다. 그러므로 여성인 어머니는 남녀 권력관계의 한 부분으로 여성학자들의 연구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여성인 어느 대중예술가는 1960년부터 아내가 가정의 ‘내무부 장관’이라 불리는 유행이 생기면서부터 가족 내 권력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했다고 진단한다. 비록 가정 내에서 일지라도, 사랑으로 포장하고 윤색해도 부부관계가 권력관계에서 원천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바람직한 부부는 이해와 양보, 애정으로 역지사지하면서 조화와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부부관계의 현실적 최선으로 서로의 자아를 지켜주는 것인가 싶다. 막무가내로 이기심과 영향력 확보를 위해서 가정 내 권력관계에 집착하다 보면 누가 권력자가 되어야 하느냐, 가정권력의 요체는 무엇이냐, 가정 내 권력의 핵심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경제권과 교육권인데, 그것들은 이미 아내들의 몫으로 되어버린 것이 옛날이라고 항변하는 남편들이 생길 것이고 아내들은 아내들대로 최종 결정권은 당신들이 행사하지 않느냐고 반발하면서 ‘가화만사성’의 화평을 깨트릴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추억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자녀학대, 육친살해 사건들이 빈발하면서 부부갈등을 훨씬 넘어버린 부모와 자식 관계, 엄마와 자녀 관계가 돌출되고 있는 현실들이 예사롭지 않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교육과 상담,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굿네이버스」의 ‘엄마처럼’을 검색해보면, “당신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아이의 내일을 바꾼다”라는 경고와 함께 “매 맞고 자란 아이는 때리는 어른이 되고, 욕 듣고 자란 아이는 욕하는 어른이 되고, 학대받고 자란 아이는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고 충고한다. “난 엄마처럼 될꺼야”하고 반어적으로 절규하는 어린 소녀의 표정이 섬직하고 음산하다. 편애해서 키운 자식, 이웃과 인척과 더불어 잘 살기보다는 일등 강박 속에 왜곡된 자아로 형성된 자식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부부간의 문제에만 매달릴 수 없는 현실에서 옛날의 엄부자모(嚴父慈母)를 상기하면서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시는’ 사례들을 찾다가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아직도 우리들이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현모양처임을 확인한다. 하필이면 봉건시대이자 가부장시대 여성의 상징인 신사임당이냐고 못마땅해 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따가운 시선과 질책에 멈칫거리면서도 반어적으로 “난 엄마처럼 될 거야”하고 절규하는 소녀의 눈빛이 하도 절실해서, 첨단의 현실이라도 아직 모범된 현모양처가 필요하고 유효함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오늘의 현실이 신사임당 같은 전범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하지만 그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여류학자의 지적처럼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에서부터 전문학자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또 고액화폐의 도안 인물로 이미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졌다.

사임당을 들어내는 주요한 조건은 무엇보다 그녀가 뛰어난 작품을 남긴 화가라는 점과 조선의 대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점이다. ‘겨레의 영원한 어머니’나 대표적 ‘현모양처’가 된 것은 그것을 의미화한 작업의 결과로 여성학자는 설명한다. 여성학자는 “진실이란 지식과 권력을 통해 생산되는 담론의 효과임을 역사 인물 사임당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고 귀띔한다. 사임당이 화가라는 사실과 율곡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겹쳐 화려한 시너지 효과를 거둔 것이 ‘겨레의 영원한 어머니’로 나타난다. 신사임당과 동시대인이면서 중국에도 그 명성을 떨쳤던 시인 「소세양」은 사임당의 그림 족자에 시를 지어 넣어 “묘한 생각 맑은 자취 따라잡기 어려워라”로 그림을 찬양했고, 선조대의 문장가 「정유길」은 사임당의 그림을 “신령이 응축되어 오묘한 조화를 빚어낸 것”으로 평가했다. 「송시열」의 사임당의 난초그림에 대한 발문은 “사람의 힘을 빌려서 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오행의 진수를 얻고 또 천지의 기운을 모아 조화를 이루어 과연 율곡선생을 낳으심이 당연하다”고 감탄하고 있었다.

사임당의 정체성은 덕행과 인품, 그리고 율곡의 어머니인 점에 있었고, 율곡을 추종하는 서인과 노론의 선비들에 의해서 그 훌륭함이 발양되어 마침내는 중국의 정호정이 형제의 어머니 후부인을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사임당은 삼종지도를 넘는 내조자였고 율곡의 좋은 가정교사였으며 시모, 친모를 잘 모신 훌륭한 부인이었다. 그러나 어느 평자의 지적대로 현대에 그를 과찬하는 것은 편협한 가족주의만을 조장할 수 있고 흙수저가 양산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금수저 예찬을 당연시 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음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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