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드네의 실
아리아드네의 실
  • 김병욱 문학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16.06.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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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문학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크레타섬의 미노스왕은 그의 아들이 아테네에서 객사하자 대선단을 이끌고 아테네를 침공하여 아테네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결과 9년마다 아테네 처녀 7명과 총각 7명을 공물로 받기로 하고 회군했다. 마침 모험을 끝내고 아테네로 귀국한 테세우스는 자신이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왕에게 간청하여 공물의 일원으로 크레타섬의 미노스왕국으로 간다.

미노스 왕의 왕비 파시파네는 해신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에 반하여 그 황소와 통정하기를 원하여 그리스의 제일 가는 공장이인 다에다로스에게 부탁하여 나무로 만든 소의 속으로 들어가 소원을 성취했다. 그런데 임신한 왕비가 낳은 것은 반인반우인 괴물 미노타우로스였다. 미노스 왕은 너무나 창피하여 다이다로스를 시켜 지하에 커다란 미궁을 짓게 하여 그 한 가운데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놓고 공물로 바쳐진 아테네의 처녀 총각을 잡아먹게 했다.

마침 미노스 왕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공물로 뽑혀 온 테세우스에게 반하여 실 한 타래를 주면서 미궁의 입구에 한 쪽을 묶어 놓고 들어가 괴물을 퇴치하고 나올 때는 그 반대를 감으면서 나오도록 했다. 테세우스는 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아리아드네가 준 실을 따라 미궁의 입구에 다다를 수 있게 되었다.

이 신화에 나오는 미궁은 여러 작가에게 상상력을 불어 넣어 소설로 형상화하게 했다. 대표적인 것에 앙드레 지드의「테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미노스 왕궁에서」등이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이 이 미노스 미궁에 대한 형상화이다. 앙드레 지드의「테세」는 일차대전 이후 무기력한 현대인을 표상하기도 했으며, 크레타섬이 고향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지적 탐험의 원천으로 이 미로를 형상화했다. 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궁 속과 같은 현실을 생각케 해준다.

이 미노스 미궁에 대한 신화는 여러 가지 신화에 대한 해석을 가능케 하고 생명의 은인인 아리아드네를 배신한 테세우스는 그 저주로 부왕을 죽게 했다. ‘아리아드네의 실’은 엉클어져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때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을 뜻한다. 신화는 현대인들에겐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상고인들에겐 생활의 현장이었고, 현실 그 자체이고, 현실을 뛰어 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필립 휠라이트는 현대인의 가장 큰 불행은 신화를 상실해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에 관한 이야기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과 대답을 마련하고 있다. 미궁을 지어서 우라노타우로스를 가두게 해줬던 다에다로스도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자신의 왕비를 통정하게 목우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 탄로되어 미궁에 갇히게 되었고 나중에 밀랍으로 날개를 붙여 탈출할 때 그의 아들 이카로스가 너무 높이 날아올라 태양에 밀랍이 녹아내려 추락했다는 이야기 등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우리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을 주어 이 미로 속을 빠져 나오게 해 줄 것인가. 우리의 잠재의식 중에는 미궁에 대한 공포가 있다. 미궁은 어떻게 보면 중심점이 없는 원과 같기도 하다.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를 중심점없는 원으로 표상할 때 우리 모두는 정상인이 아닌 비정상인인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도 미궁의 이미지를 통하여 현대인에게 장미, 곧 그리스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장미의 이름」에서 장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내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 파악이다. 우리에게 과연 아리아드네는 나타날 것인가?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실을 건네주며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라고 할 것인가. 테세우스에겐 퇴치할 괴물이 확고하지만 우리에겐 그 괴물마저 불확실하다는 것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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