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3)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3)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5.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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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끔직한 수준의 자녀 학대와 잔혹한 부모 살해의 기사들이 안타까운 뉴스로 독자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지만, 어버이날의 훈훈한 인정이 경향각지 부형들의 마음을 다숩게 해주는 오월이다.

일탈된 인성까지를 포함해서 자녀들에게 어머니는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힘들고 외로울 때는 안식처로 어김없이 어머니를 회상한다. 그런데 작가 김주영이 회상하는 어머니는 일반 자녀들의 그것과는 약간의 편차를 보이는 상 싶다. 그의 작품 「잘 가요 엄마」에서 피력하는 엄마의 선물은 크나큰 행복으로 설명되는데, 그냥 안식처는 아니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케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셨고, 파렴치로 살게 하셨으며, 쉴 새 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자유의 시간이었다.”

작가는 힘들고 외로울 때 평안을 찾는 보통의 자식들과는 다르게 깨달음을 통해서 큰 행복을 들춰내는데, “내 생애에서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한마디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오직 한마디 ‘엄마’가 가슴을 때리면서 ‘치사랑, 내리사랑’이라는 말로 어버이에 대한 자신들의 불효와 소홀했던 기억을 얼버무리는, 아니 깡그리 해소했던 나와 우리들의 이기심과 몰염치가 뜯어내버리고 싶을 만큼 싫다. ‘불효자는 웁니다’는 노래로 청승 떨기에도 면목이 없는 나이가 되었지 않은가?

얼마 전 독서 시민단체 「무등공부방」의 배려로 그 이름도 별난 유료의 「비움박물관」을 참관하면서, 그 비움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관장님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자식들을 위한 어머니의 마음에서 드러나는 비움과 당부, 그리고 자녀들이 느끼는 모정이 향기로웠다.

「빗돌」이라는 시에서 나타나는 모정이 살갑다.
엄니 엄니 울엄니
따뜻함이 도타운 울엄니 젖가슴
모질고 모질고 모진 겨우살이에도
눈티워주었던 노란 햇살보다
따스했던 울엄니의 모든 것

작품 「딸에게」를 함께 소개한다. “네 가족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지루하고 팍팍해도 참을 줄 아는 어진 아내로, 자애로운 어머니로 살아라”고 당부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좋다. 윤리와 인정이 증발해버린 현실에서 어머니들의 어머니 하는(mothering) 모습이 다숩기만 하다.

인정의 다사로움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소생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결코 이성만으로 살지 못하는 감성적 존재이기도 한 것이 분명하다. 요새 부모들과 자녀들의 일부가 욕망과 쾌락을 위해서라면 한껏 추락해도 좋다는 넋들로 헬조선에 쌓여가, 어글리코리안이 되어가는 것도 서슴지 않으니 말세가 빈말이 아닌 성 싶기는 하다.

당부를 훨씬 넘어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지독하게 기리는 서양의 이야기도 있어, 모정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이었음을 확인한다. 「동양 여성 철학 에세이」가 소개하는 모성이야기를 살핀다.

「에처 그레이」라는 사람이 쓴 〈강렬한 심장〉의 일부다. “한 소녀를 사랑한 젊은이가 있었네. 그를 조롱하며 소녀가 물었지. ‘너는 두렵지? 오늘 나에게 네 어머니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가져오는 것이’ 청년은 달려가 어머니를 죽였지. 어머니의 가슴에서 선홍빛 심장을 도려내어 사랑하는 연인에게 달려갔네. 숨이 가빠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심장이 땅바닥에 구르고 애처로운 소리를 내었네. 그리고 온화한 음성이 흘러 나왔네. ‘아가야. 다치지는 않았니?’”

이 이야기를 소개한 여성학 학자는 학생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토론했다. 그가 기대했던 것은 청년이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온 부분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 삼기를 바랐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 비록 어머니의 심장을 도려냈을지라도 자식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행복을 비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에만 감명하는 태도를 놀라워한다.

어머니의 희생과 봉사만을 생각하면서 어머니에게서는 따뜻한 온정과 이해심만을 기대한 결과로 해석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살아 온 결과로 판단한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선상에서, 더욱이 여성학적 관점에서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농부의 우매함을 드러내는 우회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여성학의 관점으로 밝혀지는 어머니의 냉철한 모습보다는 무한한 사랑으로 자식의 단점을 포용하는 어머니에게서 세파에 지치고 힘든 심신을 위로 받아 온 결과가 온전한 세상을 지탱해 온 큰 역량이었음을 잊지 못하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다. 그것이 이제까지의 우리들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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