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비아톨(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톨(여행하는 인간)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4.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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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호모 비아톨이란 말은 프랑스의 유신론적 실존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의 같은 이름의 저서 때문에 널리 쓰여진 말이다. G. 마르셀은 또한 철학자뿐만 아니라 극작가이자 비평가였다.

 
호모 비아톨1945년 불어로 출판되어 영어로 1962년 번역되었다.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으나 책을 구하지 못하여 고심하던 차에 1987228일 버클리의 헌책방에서 구입하여 읽은 것이 거의 30년이 다 되었다.
 
이 책은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총 11편의 논문으로 되어 있다. 권말에 붙은 릴케에 대한 전 2부로 된 논문은 G. 마르셀의 진면목이 보이는 글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현대인을 하이마트 로제(실향인)”라고 불렀다.
 
이 말은 20세기가 도시화와 산업화로 말미암아 현대인은 진정한 의미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란 뜻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그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서 정처 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탐색의 과정이다. 무엇인가를 찾아 인간은 부단히 여행을 한다.
 
여행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여행은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신을 찾아나서는 것일 것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인 구원의 여행은 할 수 없기에 세속적인 여행을 할 뿐이다.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도 갔고, 키르키스탄의 이식쿨 호수도 보았다. 남아공의 희망봉에 가서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에 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남미 대륙은 가보지 못해서 항상 서운한 마음이다.
 
살다 보면 희한한 일도 접하게 된다. 1999710일에는 미국의 그랜드캐넌, 1016일에는 금강산, 1214일에는 중국의 항주에 여행했다. 소위 세계의 명승지로 손꼽히는 세 곳을 한 해에 여행하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꿈만 같다.
 
나는 여행복이 있어서인지 200772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던 학술회의에 참가하였고 묘향산과 백두산 정상(장군봉)도 올랐다. 나는 중국 쪽으로 백두산에 네 번이나 올랐는데 그 때마다 천지를 볼 수 있었는데 북한 땅에서는 천지를 볼 수 없었다.
 
안내인의 말마따나 천지를 볼려면 삼대적선을 해야 한다던데, 아마 그때 천지를 못 본 것은 나뿐만 아니라 위로 2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나 살아생전 다시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꼭 보리라고 다짐했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가니 다시 북한 쪽에서 백두산에 오르기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중국도 열댓 번이나 갔고 1516일로 실크로드 여행도 했다. 정말 낙양의 용문 석굴에서 만여좌의 불상을 보았으니 내 일생 마지막 길이 편안할 것이라는 어느 동료 교수의 말마따나 과연 그럴까. 내가 불교 신자라면 인도의 아잔타 석굴도 보았으니 극락 가는 표는 받아놓은 것인데 신자가 아니어서 아쉬울 뿐이다.
 
나는 지금도 책을 열심히 읽는다. 책을 통한 마음의 양식을 찾아 나는 지식의 순례길을 걷고 또 걷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중학교 때 괴짜 국어 선생님의 말을 충실히 실천해 온 셈이다. ‘나 가리라, 그 진리의 세계로라면서 두 주먹 꼭 쥐고 뛰어온 셈이다.
 
나는 새로운 책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아마 죽는 날까지 이러한 감동이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젊었을 때는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면 달음박질을 해서라도 추월했다. 숙습이 난방이라 했던가, 한 때는 자동차 운전도 이런 식으로 했으니 쑥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수많은 여행의 출발점에 다시 선 것처럼 생각한다.
 
나는 서강대 철학과로 들어가 1학년 2학기 때 사학과로 전과했고, 2학년 1학기 때 국문과로 전과해서 국문학자의 길을 걸었다. 나는 학문 영역에서도 여행을 많이 한 셈이다. 그래서 철학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철학을 전공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호모 비아톨’, 나는 지금도 근원적인 고향을 향하여 노년이 되어 조심스럽게 발길을 떼어놓는다. 좋은 길동무를 만나면 더더욱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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