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13)-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
호남기록문화유산(13)-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
  • 김아연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6.04.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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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俛仰亭)의 옛 주인, 하늘과 땅 사이에서 면앙우주지의(俛仰宇宙之義)를 노래하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책임자: 전남대 국문과 교수 김대현, 062-513-8033)20162월부터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 호남지방문헌연구소로 개칭하였으며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는 2002년 설립되어 호남지역의 고문헌 자료를 발굴·조사·정리하고 DB화하며 연구 결과물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고문헌 자료 중에서도 핵심자료인 문집(文集), 지방지(地方誌), 문중문헌(門中文獻)을 중점적으로 조사·연구하며, 연구 결과물은 호남기록문화유산 사이트(www.honamculture.or.kr, www.memoryhonam.co.kr)’에 탑재하고 있습니다. 호남의 귀중한 자료를 집대성하고 DB를 구축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자문 부탁드립니다.

 
▲ 면앙정
면앙우주지의(俛仰宇宙之義)를 취한 면앙정(俛仰亭)
 
무등산 주변의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에는 가사문학권(歌辭文學圈)이 조성되어 있다. 가사문학권의 중심에는 가사문학의 꽃을 피운 면앙정(俛仰亭)이 있다. 면앙정은 현재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197287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면앙정은 송순(宋純, 1493~1582)41(1533)에 제월봉(霽月峯)에 창건하였다. 이 무렵에 대사헌(大司憲)의 직을 지내던 송순은 김안로(金安老)가 전횡을 휘두르는 정계를 떠나 향리(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기곡리 상덕마을)로 돌아왔는데, 정계에서 물러난 뒤 퇴휴할 안식처로써 면앙정을 창축하였다. 그리고 송순은 77(1569)에 병을 이유로 관직 생활에서 물러난 이래로 세상을 떠난 90(1582)까지 면앙정에서 유유자적하며 여생을 보냈다.
 
면앙정은 송순의 호()이면서 정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면앙(俛仰)’이라는 이름은 굽어보니 땅이요, 우러러보니 하늘이라(俛有地兮 仰有天兮).”는 대목에서 따온 것으로, 송순이 면앙우주지의(俛仰宇宙之義)를 취한(寔取俛仰宇宙之義(󰡔俛仰集󰡕 5, 行狀, <議政府右參贊宋公行狀>)” 뜻을 담은 것이다. 벼슬에서 물러난 송순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면앙정에서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의 일체를 형성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즐김으로써 천지자연과의 조화를 궁구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군자의 떳떳한 삶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맹자(孟子)가 말하는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보아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음(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孟子󰡕, 盡心章)).”과 상통한다.
 
▲ 면앙정가비
면앙정(俛仰亭) 옛 주인의 풍류(風流)를 담은 <면앙정가(俛仰亭歌)>
 
면앙우주지의 세계관을 견지하는 송순은 면앙정을 소재로 총 146구에 달하는 <면앙정가(俛仰亭歌)>를 창작하였다. <면앙정가>는 송순의 문집 <면앙집(俛仰集)>에 한역되어 신번면앙정장가일편(新翻俛仰亭長歌一篇)”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俛仰集> 4, 雜著, <新翻俛仰亭長歌一篇> 참조). <면앙정가>는 그 제작 시기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호가도(江湖歌道)를 구현한 가사(歌辭)의 선구적 작품이자 누정문학(樓亭文學)의 시초가 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송순은 <면앙정가>를 통해 면앙정 근경원경의 아름다움과 사계절의 경물을 읊고, 이로써 자연을 완상하고 호연지기를 느끼는 작자 자신의 삶을 노래하였다. 다음은 <면앙정가>의 내용이다.
 
면앙정이 세워진 제월봉은 무등산에서 시작하는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형성된 언덕이다. 제월봉은 일곱 굽이로 되어 있는데, 그 중 가운데 구비는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길한 이곳에 송순이 증축한 정자가 바로 면앙정인 것이다. 면앙정의 모습은 마치 두 날개를 활짝 펴서 천리를 날아갈 듯한 청학(靑鶴)과 흡사하다.
 
옥천산(玉泉山)龍泉山(용천산)에서 내린 물은 면앙정 앞의 넓은 들을 지나가는 냇물이 되어 쌍룡(雙龍)이 뒤트는 듯 긴 비단을 펼쳤는 듯힘차게 굽이쳐 흐르고 있다. 이것은 시적 화자가 면앙정에서 내려다보는 면앙정의 근경이다. 한편, 추월산(秋月山), 용귀산(龍歸山), 몽선산(夢仙山), 불대산(佛臺山), 어등산(漁灯山), 용진산(湧珍山), 금성산(錦城山)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진 듯 이어진 듯 숨거니 뵈거니 가거니 머물거니뽐내는 듯한 외양은 산인가 병풍(屛風)인가 그림인가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다. 이것은 시적 화자가 면앙정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면앙정의 원경이다.
 
이어서 시적 화자는 면앙정 강호의 사계를 노래한다. 봄에는 천암만학(千巖萬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흰 구름, 뿌연 연하(煙霞), 푸른 산람(山嵐)이 장공(長空)을 떠나가거나 광야(廣野)를 건너가다가 석양에 봄비가 되어 내린다. 여름에는 녹양(綠楊)에 황앵(黃鸎)이 울고, 수음(樹蔭)과 면앙정 앞 시내에서 불어오는 양풍(凉風) 덕분에 시적 화자는 면앙정의 난간에서 낮잠을 잔다. 가을에는 된서리가 내린 뒤에 단풍이 들고, 넓은 들에는 벼가 노랗게 익는다. 겨울에는 면앙정 주변의 강산이 눈으로 덮여 경이롭다.
 
한편, 시적 화자는 속세를 떠나 면앙정 주변의 자연을 완상하고 풍류를 즐기느라 바쁘다. 시적 화자는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게 하고 (악기를) 타게 하며 켜며 흔들며재촉하니 근심과 취흥을 잊게 된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누으락 앉으락 굽으락 젖히락하며 춤을 추고 시를 읊으락 휘파락 불락 마음대로 놀거니천지(天地)가 매우 넓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일월(日月)이 천지를 비추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시적 화자는 천지로 대변되는 자연, 일월로 대표되는 우주와 합일을 이루어 면앙우주하였다. 이 순간 시적 화자는 면앙정 강호를 희황(羲皇)이 다스렸던 태평성대나 신선 세계와 동일시하고, 호연지기를 즐긴다. 종국에 시적 화자는 면앙정 강호에서 풍류 생활이 가능한 것을 군은(君恩)으로 돌리며 텍스트의 끝을 맺고 있다.
 
이처럼 송순은 면앙정 강호와 합일되려는 의지를 <면앙정가>에 드러내고 있다. 송순과 같은 조선전기 사대부들이 신봉하는 유교는 불교의 극락 세계, 도교의 신선 세계와 달리 내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전기 사대부는 내세를 현세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으며, 내세는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 곧 사계로 구체화되었다. 곧 조선전기 사대부는 사계를 통해 인간의 유한한 삶을 극복하고 삶의 영속성(永續性)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송순이 <면앙정가>에서 면앙정 강호의 사계를 노래하는 대목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주역(周易)'해와 달이 하늘을 얻어 오래도록 비출 수 있고, 사시(四時)가 변화하여 오래도록 생성할 수 있고, 성인(聖人)이 그 도()에 오래 있으면 천하가 화성(化成)한다(日月得天 而能久照 四時變化 而能久成 聖人久於其道 而天下化成(<周易>, 恒卦)).”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계에 순응하는 것은 성인이 도를 지키는 삶과 같으며 천하를 덕()으로써 교화(敎化)하는 일임을 말해준다. 아울러 <중용(中庸)>군자(君子)의 중용(中庸)이란 군자(君子)로서 때에 알맞게 하는 것이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中庸, 1)).”는 말이 있다. 이것은 군자는 중용을 지키는 방법으로 때, 곧 사계에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성현의 이러한 가르침대로 송순은 <면앙정가>에서 사계에 순응하며 중용의 도를 구하였기 때문에, 면앙정 강호에서 취흥이 한껏 고조되어 마음대로 놀아도 면앙우주하고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 면앙정 현판
 
호남(湖南) 시가문학(詩歌文學)의 원류를 이룩한 면앙정(俛仰亭)<면앙정가(俛仰亭歌)>
 
16세기 호남 문인들 사이에는 사화(士禍)를 피해 경치 좋은 강산을 찾아 정자나 초당을 짓고 문우들과 어울려 선비 정신을 다지는 풍조가 있었다. 이들 정자는 강학 장소이자 시적 교유의 무대로서 일종의 문화 공간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국문학계에서는 정자에서 형성된 문학을 누정문학(樓亭文學)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면앙정은 그 주변에 있는 식영정(息影亭),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과 더불어 호남가단(湖南歌壇)을 형성하였다. 송순은 호남 사림의 조종(祖宗)인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학통을 계승하여 호남가단의 큰 스승으로 존재하였는데, 그의 면앙정에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송강(松江) 정철(鄭澈), 백호(白湖) 임제(林悌), 소쇄처사(瀟灑處士) 양산보(梁山甫),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聲遠),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사암(思菴) 박순(朴栒) 등 당대에 시문과 학식으로 명망이 높았던 여러 인사들이 출입하였다.
 
면앙정은 호남 시가문학의 산실이었다. 면앙정 주인인 송순은 시조 <면앙정단가(俛仰亭短歌)> 7, 가사 <면앙정가>를 지은 것을 위시하여 임억령, 김인후, 박순, 고경명의 한시 <면앙정삼십영(俛仰亭三十詠)>, 기대승의 <면앙정기(俛仰亭記)>, 임제의 <면앙정부(俛仰亭賦)> 등 시조, 가사, 한시문이 전한다. 이처럼 면앙정은 당대 문인들의 활동 무대로 면앙정시단(俛仰亭詩壇)을 형성하였고, 나아가 면앙정과 <면앙정가>는 호남 시가문학(詩歌文學)의 원류를 이룩하였다.
 
한편, 시민의소리(대표 문상기)와 호남지방문헌연구소(책임교수 김대현)2015년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담양군에 소재한 누정 가운데 면앙정,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독수정(獨守亭), 송강정(松江亭), 명옥헌(鳴玉軒), 풍암정(楓岩亭) 8대 누정을 선정하고, 누정의 현판들을 취재·번역해 20151212일에 <호남 주요 누정현판 완역 선집(1)-광주담양 편>을 출판한 바 있다. 면앙정 현판 번역은 이 책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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