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과 5.18민주화운동은 현재 진행 중인 역사
제주 4.3과 5.18민주화운동은 현재 진행 중인 역사
  •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
  • 승인 2016.04.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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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

지난 4월 2일부터 3일간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과 함께 제주 4.3 전야제와 추념식에 참석했다. 바다를 갈라 도착한 제주의 부두에는 노란 유채꽃과 연분홍 벚꽃의 향이 은은하게 코를 찔렀고, 푸른 바다와 이제 막 돋아난 새싹들의 푸른 기운이 어우러져 싱그럽고 아름다운 봄을 뽐내는 듯 했다.

제주 4.3이 국가적으로 추념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지 2년 째, 지난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3만명이 넘는 제주민은 세상의 오해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넋을 위로하지 못했다. 이 아름다운 제주의 4월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시구와 꼭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온 셈이다.

4월 3일,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4.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오늘은 슬퍼 우는구나”라며 한 오월의 어머니께서 제주의 하늘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말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추념식 전 오월어머니들과 제주 유족회들은 제주 4.3평화공원 한 가운데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지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며 오고가는 짧은 대화 속에 긴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아는 듯 손을 맞잡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제주 평화공원에는 각지에서 온 제주도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신이 없어 묘지는 마련되지 못했고, 이름만이 새겨진 비문 앞에서 제사를 드린다. 비문에는 마을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어떤 마을은 너무 많은 희생자가, 어떤 마을에는 적은 희생자가 적혀있었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군인이 나서서 학살을 거부한 마을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곳에서는 희생자가 적었다고 한다.

한 노인께서는 무릎이 아파 앉지도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비문에 적힌 희생자의 이름을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아내셨다. 초코파이와 바나나, 딸기 등 각종 음식들이 이름 앞에 놓여진다. “강모모의 자(子)1”, “강모모의 자(子)2” 등 비문을 둘러보다 멈추게 된 이름이었다. 이름이 지어지기도 전에 죽어간 아이 두 명. 저렇게라도 비문에 새겨져 조금이라도 그들의 넋이 위로될 수 있을까. 이름조차 알 수 없지만 분명 아름다웠을 그 아이 두 명과 아이들의 부모 강모모의 삶을 생각했다.

이제 막 슬픔의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제주 4.3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과도 꼭 닮아 있다. 광주와 제주는 20세기 식민지를 지나자마자 냉전, 이념 대립, 독재 등을 겪어온 한국 현대사의 정황들이 아로 새겨진 공간이다. 수많은 삶이 차가운 비틀림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던 공간이며, 그 아픔을 이념투쟁에 이용하고 있는 이들과 싸워가고 있는 현재 진행 중인 역사적 현장이다.

그러나 광주 5.18이 폭동이라는 이름에서 항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제 이름을 되찾아 갔지만 여전히 제주 4.3은 이름이 없었다. ‘사건’이라는 임시적인 명칭은 제 이름이 아니기에, 월과 일로 구성된 4.3이라는 날짜로만 호명될 뿐이었다.

추념식에서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우리 유족들은 울음과 탄식조차도 금기되었던 그 비극의 시절을 꿋꿋이 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통한의 세월을 감내해왔다”며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부 극우보수단체에서 '4.3흔들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4.3의 혹독했던 아픔보다도 더욱더 가슴이 쓰라린다”고 토로했다.

몇 십년간 어둠속에 묻혀있던 아픈 과거가 미래를 향한 밝은 빛이 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으며 희생자들의 재심사 논란이 진행 중이다. 책정되었던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어 왔다.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오월 어머니집의 제주 방문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서로의 아픔을 끌어안고 슬퍼할 책임을 잊지 않으려는 광주의 발걸음이 제주의 사월을 조금 더 환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으면 하고 염원하며 제주의 부두에서 다시 배에 몸을 실었다. 제주의 봄내음이 며칠째 가시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 아픔을 공유한자의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4월은 정녕 잔인한 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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