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이라쿤두스(분노하는 인간)
호모 이라쿤두스(분노하는 인간)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6.04.0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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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수주 변영로는 그의 명시 「논개」에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라고 읊고 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의 함락으로 4만 명이 도륙되는 현장을 목격한 논개는 비록 기생이지만 분연한 거룩한 분노로 왜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노는 동과서가 같이 절제되어야 할 인간의 한 특성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분노를 안으로 삭이는 것만이 최고의 덕이란 말인가. 최근에 손병석 교수의 『고대 희랍․로마의 분노론』(바다출판사, 2013)을 읽으며 서양에서의 ‘분노’의 뿌리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제1부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본 분노, 제2부 정치적 분노와 설득, 제3부 분노 치료와 행복, 이렇게 3부로 엮여져 있다. 독자에 따라 관점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제3부 분노 치료와 행복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수양이 덜 되어서 그런지 “나는 분노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굳은 신념으로 삼고 살고 있다. 우리의 근대사를 뒤돌아보면 분노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이다. 숱한 양민학살이 있었지만 우리는 분노할 줄 모르고 살아왔다. 점점 정치적․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분노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서히 데워져 종국에는 삶아져 죽는 개구리 신세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타파하는 힘이 바로 정당한 분노인 것이다. 모든 혁명의 밑바탕은 분노로부터 시작한다. 분노는 휴화산이 활화산이 되는 것처럼 모든 불평등을 일시에 날려버릴 것이다. 잔재주를 피우는 사람, 현실에 안주하여 타협 아닌 타협을 일삼는 사람, 비겁한 사람들은 분노할 줄 모른다.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은 불공정한 판을 엎어버리는 진정한 용기, 곧 올바른 분노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왜 우리의 처지가 이처럼 뒤틀려 버렸는가. 거짓말을 참말이라고 둔갑시키는 언론을 보고 참는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뭘 바라는 사람들은 언론에 대놓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바랄 것이 없으니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털털 털어버리면 가볍고 가벼우니 올바른 분노를 당당히 표출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 현실이 1%도 못 되는 소수의 가진 자들의 횡포한 짓을 다 안다. 오죽하면 ‘지옥 한국’이라고 자조 섞인 신조어를 만들어 냈을까. 이 패배주의적인 신조어에 빠지면 우리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우리에겐 성인군자의 ‘분노를 삭여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만큼 절박해졌다. 나도 가끔 친구들에게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미운 놈이 없어지더라. 그러니 다들 이쁘게 보여”라고 진반농반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가짐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타개할 수 없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취직이라는 미끼에 걸려 퍼덕이는 것을 볼 때,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생각하면 분노가 끓어오른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데도 가만히 있는 청년들을 볼 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분노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세 명제 중에 어떤 명제가 이 헝클어진 우리의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물론 마지막 명제라고 단연코 답할 것이다.

3․15부정선거가 빌미가 되어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여 광화문 네거리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 사이에 그의 동상을 세우자는 극우 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류 지배층을 이루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를 분노케 한다.

다시 4월의 하늘 아래 세종로의 가로수는 연둣빛 잎새를 보이고 있다. 그 수많은 젊은이들이 총에 맞아 숨져간 그 자리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겠다는 그 뻔뻔함에 우리는 분노한다. 우리 모두 56년 전 4월 19일에 외쳤던 그 분노의 함성을 외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함석헌 선생은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한다”는 말로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이제 우리는 “분노할 줄 알아야 산다”는 말로 우리의 불평등한 온갖 것들을 타파해야 한다. 그러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 용감해집시다. 그래야 우리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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