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년봄에 꽃필적에 우리한번 웃어보자
명년봄에 꽃필적에 우리한번 웃어보자
  • 원순석 광민회 상임대표
  • 승인 2016.03.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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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강섭 동지 영결사
▲ 故 양강섭 전 관현장학재단 상임이사

양강섭동지!
겨우내 벌거벗고 얼었던 산천은 훈풍과 촉촉이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새싹이 돋고 개나리와 철쭉이 우리를 반기건만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뭣이 급해 이리도 빨리 가시는가.

36년 전인 1980년 봄, 세상을 바꾸자며 의기투합한 우리는 첫눈에 반해 막걸리를 마셨지. 둘이서 기본이 막걸리 한말이었네. 그런 천하장사 강섭이가 이토록 허망하게 가는가.

성정이 급하여, 세상사가 맘에 안 든다고 알코올을 들이붓던 자네가 결국은 화병으로 몸져눕더니 생지옥 같은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네......

80년 7월 어느 날 자네는 몸도 못가누고 겨우 기어서 상무대영창에 들어온 것을 기억하네. 내란자금 300만원을 어디다 사용했는가를 자백하라는 것이었지. 당연히 돈 받은 적이 없다고 했겠지. 각본대로 안 되자 수사관들은 온몸을 벗기고 두 팔을 묶어 천장에 매달고 몇날 며칠을 허리띠와 몽둥이로 전신을 작신작신 두들겼지. 장사 강섭이의 건강은 그 때 벌써 무너진 것이었네. 당연히 나도 얼마의 돈을 받았다고 했지. 역시 몽둥이로 두들겨 맞으면서 말이네.
그 돈으로 우리 모두는 ‘내란주요임무종사자’가 되었네.

지난해 12월 자네와 나는 광주 도심을 벗어나 막걸리를 마시던 날, 자네는 나에게 한 구절 흥얼거렸지. 눈발 날리던 오후 무상한 세상을 노래하던 자네가 이렇게 가다니.......

<홍진백진 1>

동지섣달 긴긴밤에
잠못들어 헤매다가
홍시한점 옆에두고
탁주한잔 기울이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따로 있었더냐
고개돌려 창밖보니
백설선녀 내려오네
설아설아 예쁜설아
홍진백진 마셔불고
명년봄에 꽃필적에
우리한번 웃어보자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오후)

건강이 급전직하로 나빠지던 지난 1월, 자네는 막걸리 마시던 그 자리에서 나에게 또 한편의 넋두리를 읊었네.

<홍진백진 2>

하늘이 밝다
하늘이 밝다
잠시나마 하늘이~
홍진백진 다 마셔버린
하늘이 좋다
하찮은 육신 거둬갈 때
그리하면 좋으련만~
몸 따로 마음 따로
기가 막힐 뿐이로다.
아! 함께 거둬 갔으면~
나라는 캄캄하고
해는 서산에 지고~
이 몸 어디에 뉩힐거나~ㅎ

(2016년 1월 20일 수요일 오후)

벌써 두어 달 전, 자네는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네.

이제 모든 시름 다 벗어던지고 편히 쉬시게. 남겨두신 문옥희 여사님, 석기, 며느리, 손주 그리고 윤기, 떳떳하고 씩씩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게......

언제 불러도 정다운 그 이름, 강섭이!
먼저 간 관현이 만나거든
안부나 전해다오.
우리
저승에서 만날 때
뜨겁게 포옹할 수 있도록,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너의 주검 앞에서
굳게 다짐해 보네.

2016년 3월 30일

장례위원장 원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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