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7) 포로실기
호남기록문화유산(7) 포로실기
  • 김미선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6.03.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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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포로의 생생한 기록, 호남의 포로실기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치러진 임진왜란은 국토를 피폐화시켰고,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포로가 되어 해외로 끌려가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9~14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고, 이 중 6,300명가량의 사람만이 조선으로 돌아왔다 하니, 그 수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극한 체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록을 남기게 하였다. 사람들은 기록을 남김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토로하였고, 훗날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한 대비책으로 삼게 하였다.

문학에 있어서도 설화, 소설, 실기, 시가 등 다양한 작품이 창작되어, 전쟁이 형상화 되었다. 이 중 실기(實記)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전쟁이 일어났던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본인의 직접적인 경험을 기록한 것이기에 사실적이며, 현장성을 가지고 있다. 당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실과 극한 상황에서의 감정이 서술되어 있어 상상문학과는 또 다른 문학적 가치를 갖는다.

호남의 문인들, 임진왜란 포로체험을 기록하다

전쟁 경험은 어떤 것이든 충격적이며 비극적이겠지만, 일본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의 경우에는 그 아픔이 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경우에는 생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호남의 문인들은 임진왜란 당시 자신의 포로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실기 작품을 남겼다. 강항(姜沆, 1567~1618)의 『간양록』, 노인(魯認, 1566~1622)의 『금계일기(錦溪日記)』, 정경득(鄭慶得, 1569~1630)의 『만사록(萬死錄)』, 정희득(鄭希得, 1575~1640)의 『월봉해상록(月峯海上錄)』, 정호인(鄭好仁, 1579~?)의 『정유피란기(丁酉避亂記)』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호남의 문인으로 1597년 재침입 때 20~30대의 젊은 나이로 2~4년간 포로로서 해외를 체험하였고, 이들의 실기에는 직접 겪은 임진왜란 포로의 비극이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수많은 임진왜란 포로 중 실기를 남겨 현전하는 것은 이 다섯 편이 전부로, 이 같은 호남의 실기가 없었다면 포로들의 당시 체험을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 ≪한국문집총간≫73에 영인된『수은집』소재『간양록』
강항은 영광 사람으로, 관료의 위치에 있다가 피랍되어 해외체험을 하였으며, 일본에 2년 반이라는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르며 두 번 이송이 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관료로서 나라를 위한 일을 하려 한 강항은 이렇게 일본에 오래 머물고 다양한 곳을 경험하는 노정을 활용하여 일본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체계적으로 『간양록』에 기록하였다.

정희득은 강항과 정반대의 경우로 관직과 거리가 멀었던 자연인의 입장에서 가장 짧은 기간 해외체험을 하였다. 일본 본토에 1년 남짓 머물러 비교적 빨리 귀환을 허락받았으나, 귀환하던 중 대마도에 6개월가량 재억류되는 고통을 겪고 부산에 도착한 이후에도 고향인 함평으로 가는 힘든 육로 노정을 겪는다. 자연인으로 자신의 비극을 극대화하여 생각했던 정희득은 주로 자신의 정한을 표출하였다. 그리하여 『월봉해상록』을 통해 포로인의 심정을 절절하게 볼 수 있으며 고향집에 도착하기까지 포로 해외체험의 전과정을 볼 수가 있다. 더구나 정희득은 일기와 함께 460여 수에 달하는 많은 한시를 남겨 풍부한 해외체험 한시를 볼 수가 있다.

정희득의 경우에는 집안사람이 함께 잡혀가 정희득뿐만 아니라 형인 정경득, 조카인 정호인도 각각 실기 『만사록』과 『정유피란기』를 남겨, 포로실기 5편 중 3편이 한 집안의 실기이다. 포로체험 노정을 함께 겪었기에 세 작품에는 공통된 내용들도 있지만, 같은 경험에 대한 세 사람의 다른 시선도 볼 수가 있다.

▲ 1999년 나주목향토문화연구회에서 영인한『금계일기』
강항과 정희득 모두 온 가족이 배로 피란을 떠났다가 잡혀 일본으로 갔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노인은 이들과는 달리 혼자서 적을 관찰하다 잡혀가고 일본에서 조선이 아닌 중국으로 탈출을 하였다. 가족의 생사를 알 수는 없지만 해외체험 도중 가족의 죽음을 직접 지켜보지 않았던 노인은, 중국에서 안정되게 지내면서 학자적 관심을 갖고 중국을 기록한다. 조선으로의 출발이 확정되지 않을 때는 최귀문(催歸文)을 써서 귀환의지를 표출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보내준다고 일정이 확정된 후에는 유학자적 관심을 가지고 중국의 학문, 제도 등에 대해 문답하고 강학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금계일기』를 통해 이러한 탈출과정과 중국에서의 교유를 볼 수가 있다.

호남 포로실기가 갖는 의의

적은 신이 사족(士族)임을 알고서 신과 형·아우를 일제히 선루(船樓)에 결박하고, 배를 돌려 무안현의 한 바다 모퉁이로 끌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적선 6백, 7백 척이 두어 리에 걸쳐 가득 차 있었고, 우리나라 남녀가 왜놈과 더불어 거의 반반씩 되었는데 이 배 저 배에서 부르짖어 우는 소리가 바다와 산을 진동하였습니다. - 『간양록』 중에서

아내가 어머니·형수님·누이동생과 더불어, 앞을 다투어 바다에 몸을 던졌다. 우리 형제는 적도(賊徒)가 배 안에 묶어 두어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었으니, 망극하고 통곡할 뿐이었다. 법포(法浦)에서 피란하던 배가 당초에는 바둑판 벌여 있듯 했었는데, 어찌하여 우리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늘을 부르짖고 땅을 쳐, 간장이 찢어질 듯하였다. - 『월봉해상록』 중에서

위는 피란을 떠났다가 왜적에게 잡힐 때의 상황을 기록한 부분이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왜적들에게 잡혀 울부짖는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포로실기를 통해 생생히 볼 수가 있다.

▲ 1986년 함평군향토문화연구회 진주정씨월봉공종중회에서 영인한『정유피란기』
이러한 호남의 포로실기는 네 가지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첫째, 임진왜란기 포로들의 해외체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유일한 작품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임진왜란 때 9~14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고, 이 중 6,300명 가량의 사람들이 조선으로 돌아왔는데, 이 포로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실기로 남겨 전해지는 것은 이 다섯 편의 작품이 유일하다. 더구나 체험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포로체험 당시의 감정까지 엿볼 수가 있다.

둘째, 한국문학사에서 본격적인 실기문학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기는 전쟁과 같은 실제 역사적 현장을 체험한 사람이 자신의 직접 체험을 기(記), 록(錄) 등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 기록에는 없는 체험자의 감정까지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7년에 걸친 비극적인 전쟁은 실기 창작의 원인이 되어 우리문학사에 실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종군, 포로, 피란, 호종 등 다양한 전쟁체험을 대상으로 실기가 기록되었는데, 이 중 가장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또 완결된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호남의 포로실기이다.

셋째,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호남의 포로실기는 노정의 차이와 작자 신분의 차이로 인해 다양한 면모를 갖는다. 호남의 포로실기를 통해 관료, 학자, 자연인 등의 다양한 시각, 일본과 중국의 넓은 공간 체험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포로체험의 시작인 피랍부터 억류 중 이송, 중국으로의 탈출, 귀환길의 대마도 억류, 조선 노정의 고난 등 당대 포로들이 겪었던 다양한 체험을 소, 일기, 한시 등 다양한 문체로 볼 수가 있다.

넷째, 작품 서술 배경으로 일본과 중국이 다루어져서 문학 공간의 확장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임진왜란은 조선, 일본, 중국이 주요 참여국이지만 조선인이 이들 나라를 경험하고 남긴 문학작품은 드물다. 또한 종군실기, 피란실기, 호종실기 등 다양한 전쟁실기가 창작되었지만 모두 국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강항, 노인, 정희득 등의 포로실기가 있음으로써, 임진왜란 실기 문학의 공간이 적국인 일본, 참전국인 중국까지 확장된 것이다.

▲ 일본 전국시대의 지도(http://www.sengokujidai.net/sengokumap.html(戰國時代ネット))
호남은 16세기 송순, 임억령 등 뛰어난 문인들이 활약했던 지역이자, 임진왜란 때 고경명, 김천일 등 많은 의병들이 일어난 지역이다. 그런 문학적, 정신적 풍토 속에서 성장하였기에 강항, 노인, 정희득 등은 포로로서 해외체험한 내용을 생생하게 기록한 포로실기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인 실기가 있기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의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경험과 애절한 심정을 볼 수가 있다. 앞으로도 소중한 호남의 기록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 과거를 살펴보고 현재를 돌아보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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