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포필리아(장소애)
토포필리아(장소애)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2.24 16: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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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포필리아라는 말은 중국계 미국의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이 처음 쓴 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환경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갖는 일련의 정서적 태도가 가치에 얽혀있는 인간의 심성을 가리킨다. 아마 이-푸 투안이 동양인이 아니었다면 『토포필리아』라는 저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비교적 전문서적이지만 보통의 독자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저자 자신이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오스트렐리아에서 중학교,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영국에서 옥스퍼드대를 졸업했고 미국의 버클리대에서 대학원을 마쳤으니까 그는 가히 코스모폴리탄(세계인)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지리 과목에 흥미를 가졌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박사학위 논문도 『한국현대소설의 시간과 공간 연구』였다. 내가 투안을 알게 된 것은 논문 준비로 공간에 관한 책을 탐색하는 과정에서였다. 그래서 1986년 버클리대에 방문교수로 갔을 때 『토포필리아』를 사려했으나 절판이 되어 구입하지 못하고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복사해 와서 1988년 봄 학기에 대학원 세미나에서 한 학기 동안 그 책을 철저히 다뤘고 한국문학에 이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를 했다.

그러니까 이 책과 인연을 맺은 것이 어언 30년이 되었다. 원래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1974년 프렌티스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그 후 절판되었다가 컬럼비아대 출판부에서 1990년 모닝사이드 판으로 재판되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이 판을 번역해서 에코리브르에서 2011년에 간행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총서 시리즈인데도 이 저서에 대한 해제가 없는 것은 큰 유감이다. 투안은 1930년생이니까 현재 생존해 있는 학자이고 그 자신 작은 책자로 자서전 『Who am I (나는 누구인가)』를 1993년에 펴낸 바 있다.

그리고 그는 『공간과 장소』, 『분할된 세계와 자아』, 『공포의 풍경』, 『지배와 애착』, 『좋은 삶』, 『도덕성과 상상력』, 『낯설음과 이상함을 넘어』, 『코스모스와 화롯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투안의 또 다른 중요한 저서 『공간과 장소』는 1995년 대윤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이 번역되어서 이-푸 투안이 누구인가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 방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도 번역자들이 지리학을 전공한 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해제가 없다. 이런 것이 우리 학계의 수준이 아닌가 하니 서운한 감이 든다.

이-푸 투안은 돈이 없어 1950년에 유럽에서 배로 뉴욕에 도착하여 샌프란시스코까지 기차로 미대륙을 여행했는데 그 때의 경험이 그가 지리학자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나면서부터 세계인이 되었고 중국인의 풍부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실증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던 지리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셈이다.
 
우리 동양인들은 자연과 맞서지 않고 ‘물아일체’라는 정신에 충실하려 한다. 곧 올바른 동양인의 삶은 생태론자의 삶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우리가 얼마나 자연경관을 훼손해 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늘 무등산을 생각할 때 가을에 송정리에서 보았던 쥘 부채를 활짝 펴놓은 것 같은 원경이 ‘무등’이라는 이름에 제일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등산을 처음 본 것은 1951년 12월 초 비야에서 걸어서 광주로 갈 때였다.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둥그런 산은 큰 반달같게 내 인상에 박혀있다. 장소애 중에서도 제일 우리와 관계가 깊은 것이 ‘고향’일 것이다. 릴케가 말했듯이 현대인은 ‘고향을 상실한 사람’이고 ‘뿌리 뽑힌 인간’인 것이다. 우리의 고향은 죽어가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 때문에 탈향이 집단화되었고 국토개발이란 미명 아래 우리의 산하는 난도질당하고 있다. 건설업자들의 욕심에 놀아난 정부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볼썽사나운 아파트의 천국을 만들었다. 이럴 때 투안의 『토포필리아』는 우리에게 조용한 경종을 울려주고 있고. 누가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하겠는가. 우리의 산하는 음습한 공동묘지를 연상케 할 뿐이다. 사람이 자연을 사랑하는 그런 세상이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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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일 2022-05-03 07:19:31
    우리 스승님의 훌륭하오신 글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만을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