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5) 호남유산기
호남기록문화유산(5) 호남유산기
  •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김순영
  • 승인 2016.02.18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산기(遊山記) 속 호남 산에서 노닐다

호남의 기록문화 유산인 호남문집(湖南文集) 속에는 시(詩), 서(書), 기(記), 일기(日記), 서(序), 발(跋)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호에는 이 작품들 중 산을 유람하고 그 유람 과정과 감회를 기록한 유산기(遊山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유산(遊山)과 유산기(遊山記)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산을 찾고 좋아하는 것이 특별히 주목받을 일은 아니지만, 산의 정기(精氣)를 느끼기 위해 좋은 산(명산)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눈여겨 볼만 하다.

산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놀이 공간으로서 물질적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인간의 사유(思惟)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공자도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라 하였는데,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는 산을 찾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더구나 교통이 발달하지 않고, 요즘과 같이 등산화, 등산복, 등산 장비 없이 며칠 동안 산을 유람했던 옛 우리 선비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우리 선인들에게 있어 유산(遊山)은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 즐기다가 내려오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요즘은 산을 오르는 행위를 등산(登山)이라고 하는데, 옛 우리 선인들은 대부분 유산(遊山)이라고 하였다. 등산(登山)과 유산(遊山)의 차이는 무엇일까? 등산과 유산의 의미를 살펴보면, 등산과 유산은 산을 오른다는 행위 자체는 같지만 산을 찾는 목적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등산(登山)은 말 그대로 등(登) 즉 오르는 것에 그 목적이 있고, 유산(遊山)은 유(遊) 즉 노니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여기에서 노닌다는 것은 단순히 즐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선인들은 산 유람을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길 원하였고, 공자와 같은 성인들의 뜻에 가까이 가고자 하였다. 이러한 모든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 바로 '유산기(遊山記)'이다.

유산기(遊山記)는 산을 여행하고 남긴 산문 형식의 한문 문학작품이다. 유산기는 대부분 산을 오르게 된 동기, 입산과 하산, 그리고 귀가의 과정이 일기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고, 작자가 산과 그 주변 지역을 여행하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유산기 안에는 산의 경치와 형세뿐만이 아니라 산에 얽힌 전설, 인물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유산기는 유산기 나름의 형식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내용과 서술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기록한 유산기와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서술한 유산기이다.

전자는 작자의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대부분 일기체 형식으로 등산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고,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유람의 여정에 대한 서술보다는 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산기의 특성에 따라 지리․역사․문화학적으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된다면 지역 문화가치 창출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호남문집 속에 수록된 호남유산기

유산기는 대부분 문집(文集) 속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문집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금강산 유산기이다. 금강산 유산기는 국문으로 된 작품 30여 편을 포함하여 약 240여 편의 유산기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지리산 유산기이다.

지리산 유산기는 약 90여 편으로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 대부분 번역하였다. 이 외에도 가야산, 청량산, 삼각산, 속리산, 백두산, 천마산, 소백산, 계룡산, 관악산, 금오산, 백운산, 주왕산, 내연산, 스락산, 오대산, 천관산, 태백산, 감악산, 금산, 덕유산, 두타산, 만덕산, 설악산, 청평산, 칠보산 등 많은 산들의 유산기가 남아 있다. 이 산들은 우리나라에서 명산으로 꼽히며 지금도 유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한 두 편의 유산기가 남아 있는 산들을 더하면 그 수는 더욱 많다.

호남에도 유명한 산들이 많이 있다. 최근 호남지방문헌연구소(구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 호남문집(文集)에 대한 자료 조사 및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호남 명산들의 유산기가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호남 유산기 작품들은 대부분 호남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문집이 매우 방대하여, 문집 속에서 유산기 자료를 발굴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문집들도 많이 있고, 전해지는 과정 속에서 유실된 것들도 상당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문집이 조사․정리되면서 호남유산기의 현황이 조금씩 파악되고 있으니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남문집 속에 등장한 호남 산은 금골산(金骨山), 덕유산(德裕山), 도솔산(兜率山), 두륜산(頭輪山), 만덕산(萬德山), 망덕산(望德山), 백암산(白巖山), 백운산(白雲山), 변산(邊山), 사자산(獅子山), 서석산(瑞石山), 월출산(月出山), 유달산(儒達山), 종고산(鍾鼓山), 지제산(支提山), 천관산(天冠山), 팔영산(八影山) 등이다. 이 산들은 최소 1,2편 이상의 유산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유산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광주의 서석산(지금의 무등산)이다. 현재까지 호남문집 속에서 발견된 호남 유산기는 약 100여 편 정도이며, 앞으로 호남문집과 함께 조사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면 상당수의 유산기들이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 제봉 고경명의 『유서석록』

광주의 진산(鎭山) 무등산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호남문집에 대한 조사와 정리를 꾸준히 해오면서 지난 2010년에는 무등산 유산기 18편을 모아 번역한『(국역)무등산 유산기』를 출판하였다. 『무등산 유산기』는 호남지역에서의 최초 유산기 번역집으로 무등산을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는 5편의 무등산 유산기가 더 추가로 발견되어 호남에서는 가장 많은 유산기를 가지고 있다.

무등산 유산기의 첫 작품은 정지유의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이다. 작가의 생몰연대와 무등산 유람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그 제작 시기를 15~16세기로 추정한다. 그리고 무등산 유산기를 가장 대표하는 작품은 16세기에 창작된 제봉 고경명의 <유서석록(遊瑞石錄)>이다.

<유서서록>은 임란 이전 무등산의 모습을 가장 잘 그리고 있고, 무등산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그 자료적 가치를 크게 인정받았으며, 호남유산기 창작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또한 4,800여 자로 호남유산기 중에서는 가장 긴 작품이며, 4박 5일 간의 유람 일정을 일기체 형식으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제봉 고경명은 광주 출신의 조선 중기 문인이자 의병장으로 당대에 명망 받는 인물이었다.

<유서석록>은 고경명이 1574년 4월 20일부터 5일간 광주목사 갈천 임훈(林薰)을 배행하면서 여러 문인들과 무등산을 등산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대부분의 유산기들은 작자의 개인 문집 속에 들어 있는데, 고경명의 <유서석록>은 자신의 개인 문집인 『제봉집』에 들어 있지 않고, 『유서석록』이란 제명으로 따로 간행되었으며, 일기 자료로 분류되고 있다.

무등산 유산기는 20세기까지 꾸준하게 창작되었다. 무등산 유산기를 통해 우리는 무등산이 광주의 진산이자 호남의 명산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고, 무엇보다 호남인의 절의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 호남기록문화유산 홈페이지 <일기자료> 분야에 탑재된 『유서석록』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재)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과 함께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호남기록문화유산 발굴ㆍ집대성ㆍ콘텐츠화> 사업은 호남문집 및 지방지, 고문서, 일기자료 등의 DB화 작업으로 호남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기록 자료들을 한 곳에 모아 자료를 집대성한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호남의 기록 자료 집대성은 향후 2차적, 3차적 연구의 길을 열어줄 것이며, 앞으로는 주제별로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호남유산기 연구가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호남 산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담긴 유산기를 통하여 호남지역의 지리․역사․문화․인물 등에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 지역문화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