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6.02.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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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묘한 인연을 맺는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문화사가로 꼽히는 요한 호이징아가 지은 「호모 루덴스」를 처음 알게 된것이 52년전이다.

물론 당시에는 번역본이 없어서 영어로 번역된 책으로 읽었고 1년 뒤에는 독일어 번역본으로 한 3개월 걸쳐서 읽었다. 그리고 나서 1981년 까치에서 출판된 책(김윤수 교수 역)을 읽었으니 삼독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었으니 네 번을 읽은 셈이다. 50여년의 세월동안 나도 이것 저것 공부한 것이 축적되어 이 책의 핵심이 무엇이고 미흡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호모 루덴스」의 저자 요한 호이징아는 1872년에 태어나 1945년 2월 나치에 의해 감금된 상태에서 해방을 얼마 남기지 않고 타계했다. 그를 20세기 최고의 문화사가로 꼽게 한 「중세의 가을」은 1919년 그의 나이 47세 때 출판되었으며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판된 「에라스무스」에 이어 1938년 그의 나이 66세 때 출판된것이「호모 루덴스」였다.

「호모 루덴스」야말로 문화사가로서 그 진면목을 보여준 저서라 할 수 있다. 물론 ‘놀이’에 관한 책이 장 피아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저술로 나왔지만 포괄적인 문화 현상으로 접근한 책은 「호모 루덴스」가 단연 압권이다.

이 책은 총 12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 1장 문화현상으로서의 놀이의 본질과 의의와 제 12장 현대문명에서의 놀이의 요소가 핵심이다.

따라서 바쁜 사람은 이 두 장만 읽어도 이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는 이상의 시 세계를 ‘놀이’로 읽었다. 착상만 했지 막상 논문으로 완성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나처럼 ‘놀이’에 대한 관심분야가 다른 사람들은 ‘언어’, ‘문화’, ‘법’, ‘전쟁’, ‘지식’, ‘시’, ‘신화’, ‘철학’, ‘예술’등과 놀이의 상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나도 나중에 말셀 그라네의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를 영역본으로 읽을 때「호모 루덴스」를 읽은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동양의 고전 시가의 핵심인 「시경」을 축제의 요소로 풀어간 그라네의 식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호모 루덴스」를 너무 범박하여 흠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싶어진다. 어떤 책이나 단점이 없는 책은 없다. 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많을 때 그 책은 생명력을 가지기 마련이다.

오늘 날 동양인의 처지에서 볼때 서양 문화에서의 ‘놀이’를 연구한 것이기 때문에 인류 역사의 절반이 날라가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아프리카인,아랍권까지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호모 루덴스」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20세기 들어 문화인류학, 민속학의 눈부신 발전은 새로운 ‘놀이문화’가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고 새로운 매체, 곧 사이버 공간에서의 게임도 놀이의 영역을 확대해 주고 있다.

“놀줄 모르는 아이는 공부도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놀이가 정치를 빗대어 우리의 현실 정치를 풍자할 수 있을 것이다. 육두문자로 “놀줄도 모르는 놈이 놀고 자빠졌네”라는 말이 매우 적절할 것이다. 심술부리며 생떼를 쓰는 형을 두둔만한다면 그 집안은 장래가 없다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아이를 그냥 놔두면 어른이 되어 더 망나니가 될 것이다. 장기의 놀이 규칙중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가 포가 포를 먹을 수 없는 것인데 그 규칙을 깨고 포가 포를 먹는다면 그 장가판은 깨지고 말 것이다. 판을 깨는 사람이 상대를 향하여 판을 깬다하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놓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모든 구경꾼(언론 〮 .국민)들이 놀이의 규칙을 어기고 있다고 나무라지 않고 되레 옳다고 맞장구를 치니 이거 정말 개명 천지가 맞단 말인가. 놀줄 모르는 사람은 〮「호모 루덴스」를 꼭 읽어야 할 것이다. 문명권 마다 놀이의 규칙이 다르고 개인마다 노는 방식이 다르다 하더라도 큰 테두리는 정해져야 서로 함께 놀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책은 이처럼 우리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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