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3) 지방지
호남기록문화유산(3) 지방지
  •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
  • 승인 2016.01.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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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의 한 축을 담당한 시사(詩社)

흔히들 향토지라고 일컫는 지방지(地方誌)는 넓은 의미에서 각 지역의 읍지(邑誌), 서원・사우지(書院・祠宇誌), 향교지(鄕校誌), 사찰지(寺刹誌), 누정지(樓亭誌) 그리고 시사지(詩社誌) 등을 포함한다. 읍지에는 지역의 사회, 경제, 문화, 지리적인 정보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읍지는 지방지의 중심으로 총론에 해당되며, 서원지, 향교지, 사찰지, 누정지, 시사지 등은 각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각각은 각 분야별로의 내용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각 지역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읍지를 비롯한 여러 지방지들에 대한 관심이 곧 지역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왼쪽부터 <조선호남지>, <곡성향교지>, <필암서원지>, <포충사지>
지방지 중에 시사지(詩社誌)는 대부분 시사(詩社)에서 간행한 시집을 말한다. 이 ‘시사’라는 말은 쉽게 시동인(詩同人)과 같은 말로 이해될 수 있으며, 시회(詩會) 또는 시계(詩契)라고도 한다.

이 시사의 연원으로는 중국의 경우에는 진대(晉代)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시사(蘭亭詩社)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려시대의 기로회(耆老會), 죽림고회(竹林高會) 등을, 조선시대는 16세기경 김창흡, 홍세태의 낙송루시사(洛誦樓詩社), 18세기경 정약용(丁若鏞)을 주축으로 하는 죽란시사(竹蘭詩社)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중기 이후에는 양반과 양인의 중간신분인 중인계층을 중심으로 시사가 결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시사로는 천수경(千壽慶)이 중심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 장지완(張之琬)이 중심이 된 비연시사(斐然詩社), 유재건(劉在建)과 최경흠(崔景欽)이 중심이 된 직하시사(稷下詩社) 등이 있다.

이들 중인계층의 시사는 근세에도 지속되면서 일명 ‘위항문학(委巷文學)’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들은 계층의 성격상 신분적 경제적 문제에 대한 불만과 좌절을 작품을 통해 표출하기도 하고, 양반 사대부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여 그 사대부의 시사를 모방(模倣)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향유계층(享有階層)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위항시사의 시대적 의의는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렇게 시사의 연원을 말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20세기 이후에도 호남지역 곳곳에서 시사가 적지 않게 결성되어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되는 것이 바로 각 시사에서 발행한 시사지이다. 이 때문에 시사에 대한 자료수집 및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구 전남대학교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2002년부터 호남의 고문헌을 조사 정리해 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문헌을 크게 호남의 한문문집과 지방지, 그리고 문중문헌 등으로 분류하여 이들 호남의 지방문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정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0년부터 호남기록문화유산 발굴・집대성 콘텐츠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각 사업부문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해오고 있다.

호남 지방지 부문에 해당하는 호남지역의 시사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호남 지방지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시사에서 발행한 시사지(시집)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사지들의 서・발문을 통해 그 결성한 시기 및 간행년도를 살펴보면, 애국계몽기를 거쳐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호남지역 곳곳에 시사를 결성하여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국문시가 아닌 한시를 창작하는 모임이 이 시기에 적지 않게 존재했다는 사실은 20세기 근・현대 한문 문집이 천여 종이 넘는다는 사실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적어도 당시 국문시가 아닌 한시를 창작하는 모임인 시사가 어떻게 각 지역에서 결성되었는지 그 이유와 과정을 시대적인 맥락을 통해 의문의 매듭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광주지역에 해당하는 시사만 하더라도, 해양음사(1933), 금북시사(1937), 만귀정시사(1939), 광주음사(1953), 무진음사(1965), 서림음사(1972), 광림음사(1982년경) 등 총 7개의 시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중에는 그 회원 수는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무진음사와 서림음사는 현재에도 그 맥을 이어 활동하고 있다.

이 중 해양음사는 1933년 일제강점기에 중에 결성된 시사로, 한말의 부호 최석휴와 기동설 등의 문인들이 무등산 아래 선원동에 위치한 운림당이라는 곳에서 결성하였다. 이 시사에서 간행한 책은 총 2권이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나라 문사들의 작품은 물론, 일본과 중국인들의 작품도 수록되어 있으며, 남농(南農) 허건(許楗)이 그린 운림당도(雲林堂圖)도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남농 선생은 동양화가로, 그의 조부는 조선 후기 호남의 화가 소치(小癡) 허유(許維)이며, 아버지는 미산(米山) 허형(許瀅)이다. 그는 3대째 호남화단의 맥을 이은 인물이다.

무진음사는 1965년에 결성되어, 이 시사에서는 시집 <무진음사시고>를 간행하였다. 1집은 1970년을 시작으로 2012년에 8집을 간행하였다. 시사는 광복 이후에 결성되었으나, 현대까지 지속적으로 그 맥을 잇고 있는 광주지역의 시사 중 하나이다.

또한 1970년에 간행된 <무진음사시고>의 서문에서 “회원들의 시는 청기일운(淸氣逸韻)한 시가 많고, 잘 다듬어 정련한 공이 부족하지만, 다년간 독서궁리해서 시를 정련하는 것에 힘쓴다면 고인의 훌륭한 시와 다름이 없어질 것이니 후세 사람들이 무진음사의 시인들의 시를 보면, 조자건, 도연명, 이백, 두보의 무리로 여길 것”이라고 하며 시사원을 권면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 내용을 통해 시사원들이 지향한 바를 알 수 있어 시사의 성격 또한 알 수 있다.

또 광주공원 내에 세워진 <무진음사기실비(武珍吟社紀實碑)>에는 “무진음사 회원들의 명단 및 시학이 점차 쇠퇴해져 감을 걱정하여 호남의 선비들과 계를 맺어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을 따와 무진음사라 하였다.”는 시사의 결성 취지와 명명에 대한 내용 등이 새겨져 있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무진음사는 효당(曉堂) 김문옥(金文鈺) 선생의 제자인 벽초(碧初) 손평기(孫坪琦) 선생에 의해 현재에도 시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해양음사에서 간행한 <운림당시문집>과 남농 허건의 <운림당도>
▲광주 무진음사의 <무진음사시고>, 화순 문우사의 <문우사시고>, 전주 패성시사의 <패성시고>
이외에도 광주・전남에는 화순의 금곡음사, 장성의 풍영계, 목포의 목포시사, 고흥의 영주음사, 구례의 매월음사 등 광주의 시사 7개의 시사를 포함하여 약 40여 개의 시사가 있으며, 전북에 전주의 패성시사, 남원의 용성시사, 고창의 행하계, 군산의 군산시사, 김제의 벽성시사 등 약 30개의 시사가 더 있다. 물론 이 내용은 자료 조사 과정 중에 있는 결과로, 계속해서 추가될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본다면 호남에는 약 7-80여 개를 넘는 시사가 있을 것으로 본다.

호남은 문학의 산실로, 이러한 시사가 결성되어 활동한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는 연구들을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은 호남지역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문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시대는 아마도 조선시대일 것이다. 많은 작가를 통한 많은 문집이나 작품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연구도 조선시대만큼은 아니지만, 현전하는 자료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연구되었고, 또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근・현대의 한문학 연구는 매우 부진한 상태이다.

비록 시대를 달리하고는 있지만, 당시 시사에 포함된 시사원들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한시인들 임은 분명하다. 시사에 대한 연구는 잊힌 그들을 다시 세상 밖에서 빛을 보게 함은 물론, 지역적으로도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방대한 작업은 어느 개인은 물론 하나의 연구소에서는 성사시킬 수 없다. 그만큼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와 관련한 자료를 소장하고 계신 개인이나 여러 문중의 적극적인 자료공유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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