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질타에 안절부절하다
까마귀의 질타에 안절부절하다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1.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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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금수회의에 첫 번째로 등단한 까마귀가 자랑하는, 저들의 반포지효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잠시나마 머뭇거려진다. 까마귀가 자화자찬하는 반포지효는 그들이 먹을 것을 물고 와서, 그것을 게워내 그 어미를 봉양, 키워준 망극한 은혜를 갚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의 한국을 사는 우리 어른들의 꼬락서니가 어처구니없어서 망설여짐을 금할 수 없다.

희망을 접어버린 7포세대의 우리 자녀들에게 기껏 흙수저나 물려주는 처지에, 세월호 사건에 이어 부천 초등생 살해사건의 가해자가 그 부모라는 현실에 전율과 부끄러움을 감당할 길이 없는데, 반포지효로 자녀들의 효성을 채근하는 것 같아, 말을 이어가기가 두려울 따름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20세기에서 살았던 어버이로서 그냥 부형들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까마귀를 빙자해 너스레를 떠는 듯해서 면구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 까마귀를 자비로운 새라고 말하는 것을 알고 나서, 반포지효가 자녀들의 효행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반포의 효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들어내는 것으로, 반포가 결코 일방적은 아니었다. 인간사 현실에서 자식의 반포는 보기가 쉽지 않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반포는 다반사였다.

일방 쌍방을 논하기 전에 반포적 애정은 사람들의 도리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보다 근원적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나 어짐으로 측은지심을 추동한 유교의 가르침은 윤리전범으로 전형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천륜은 사람관계의 첫 출발점인데, 그 출발점에 친함이라는 애정이 없고 이해타산이라는 메마른 셈본만 있었다면, 수 십 억년에 달하는 생명의 역사와 사백만년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가 오늘에 이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생명들 사이에서 또는 생명 안에서 이해타산의 셈법과 경쟁으로 시종했다면, 그 생존을 파멸시켜 수 십 억년의 생명사는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백년도 제대로 못사는 인간들의 삶, 그 배후에는 수 십 억년에 달하는 생명사가 이미 있어 왔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적은 이익과 편의를 위해서 천륜마저 거스르면서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옳고 그르다는 윤리 이전에 불가능하다. 인간인 우리 생명의 첫 출발을 상기하다 보면, 미웠던 천륜도 시원찮은 혈통들도 소중해져서 결과적으로 그 만큼의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의 인생이 튼실해지고 도타와 질 것이다. 우리의 주변들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주고 무엇을 해주었는지 집착하지 말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무었을 해주었는가를 겸허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면, 그 만큼은 우리와 그들이 함께 되어갈 것이다. 실질은 제쳐두고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가운데 진실은 휘발하고 마는 것은 만고의 진리.

까마귀 가라사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함이 하느님의 법인 줄 알아야 한다”. 이어서 부연하기를 “지금 세상 사람들은 낱낱이 효자 같되 실상 하는 행실을 보면 주색잡기에 침혹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며 형제간에 재물로 다투어 부모의 마음을 상케 하며, 제 한 몸만 생각하고 부모가 주리되 돌아보지 아니하고 학식이라도 좀 있는 여편네는 주제넘게 온화 유순한 부덕을 잊어버리고 시부모를 어리석은 물건같이 대접하고, 심하면 원수같이 미워하기도 하니, 인류사회에 효도가 없게된다”는 까마귀의 장광설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세월이 가는 줄을 모르고 저희 부모가 식사를 했는지 처자가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쏘다니니 어찌 까마귀족속만 하리오. 사람은 일 아니하고 놀면서 잘 입고 잘 먹기를 좋아하되, 우리 까마귀는 제가 벌어 제가 먹는 것이 옳은 줄 아는 고로 결단코 사람들이 하는 행위는 아니하오”

까마귀의 장광설이 비수처럼 가슴을 후벼 필자의 지나 온 전 시간이 트라우마가 되어 가슴을 옥죈다. 김영승 시인이 그의 시 ‘별’에서 들어내고 싶었던 것처럼 반성의 대상은 삶의 모든 것, 세계의 모든 것으로 수준 높게 승화시키는데, 함부로 그리고 쉽게 살아버린 필자의 지난 시간은 오히려 고황의 병이 될까 두려우니, 차라리 까마귀 고기라도 먹어서 금수회의의 까마귀연사의 의기양양한 장광설을 잊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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