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충고에 귀 기울이다
동물들의 충고에 귀 기울이다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1.1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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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회고록을 읽고서

▲이홍길 고문
북한은 수소탄 실험을 성공시켰고, 남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미국은 B52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전개하는 무력시위를 펼쳤다. 대한민국 국회는 여야간 선거구획정 협상을 공전시킨 채 한해를 넘겼다.

민주화를 위하여 기필코 정권교체를 이룩하겠다는 제일야당 새정연은 더불어 민주당으로 리모델링하고 안철수는 국민의 당을 창당했으며 천정배는 17일 가칭 국민회의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안산의 단원고는 희생된 262명의 학생과 교사들의 졸업식을 대신한 ‘눈물의 방학식’을 거행하였다.

내우외환의 고삐가 안팎으로 조여와 한반도와 대한민국은 질식하리만치 숨이 찬데 백성들은 담담하기만 하다. 냉전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국제정치가 심층의 원인이라 하지만, 남북의 분단이 초래하고 남북의 정권들이 그 빌미를 제공하여 조성한 위기 국면이다.

상황이 잘못되면 그 결과는 한민족 공동체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겠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인민들의 삶은 재껴둔 채,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는 수소탄 제조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저지르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핵탄이 결코 밥이 될 수 없는데도 감행하는 것은 평양정권의 생존을 위한 엄니가 되기 때문일까?

역주행하는 남한의 민주화가 정상화가 필요하듯 평양정권도 그들의 명목가치인 인민정권을 회복해야 할 것인데, 여전히 대량 살상 무기들이 삼림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어, 그 전도가 어둡기만 하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고, 자유롭게 생을 즐기고 싶고 안전하고 싶은데, 천재가 아닌 인재로, 그것도 스스로가 마련한 업보로, 전전긍긍한 삶들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의 노력은 다 했음에도 기다리는 천명은 오지 않으니(진인사대천명) 짐승들의 충고라도 경청함이 어떨까 하고 자문해 본다.

내우외환의 잠재성 질환에 찌들어 그 위기감마저 둔해져 버린 한국의 현실과 그 현대사는 불가피한 천재가 아니라 인재이다. 고난과 질곡의 시간을 경험한 공동체는 역사가 주는 경험을 뼛속에 새길 만도 하건마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욕지거리를 쉽게 나불거렸던 것도 무색하게 동물들의 비아냥과 충고를 듣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화기 시대의 신소설 작가 안국선이 1908년에 쓴 ‘금수회의록’ 이라는 동물 의인화의 우화소설을 살펴보기로 한다. 안국선은 관비 유학생으로 동경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대한제국에서 서기관·군수를 지낸 벼슬아치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금수회의록⌟에서는 까마귀·여우·개구리·벌·게·파리·호랑이·원앙새 등 여덟마리 짐승들이 나와, 인간을 비아냥거리면서 에둘러 충고를 한다.

작자는 서언에서 현실을 진단하기를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졌다”고 슬퍼하면서 금수만도 못한 이 세상을 장차 어찌하면 좋을꼬 하고 근심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는 꿈속을 헤매다가 ‘금수회의소’에 다달아 인류를 논박하는 짐승들의 회의를 방청한 내용을 기록하게 된다. 두 번째 연사로 여우가 등단하여 ‘외국의 세력을 빌려 의뢰하여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어 하려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여 제 나라를 망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하고 사람들을 규탄하고, 세 번째로 개구리가 나와 가라사대 ‘조그만치 남보다 먼저 알았다고, 그 지식을 이용하여 남의 나라 빼앗기와 남의 백성 학대하기와 군함·대포를 만들어서 악한 일에 종사’한다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규탄하고 네 번째로 벌이 나와 머리를 까딱이며 연설한다.

‘거죽은 사람의 형용이 그대로 있으나 실상은 시랑과 마귀가 되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고 서로 잡아먹어서, 약한자의 고기는 강한자의 밥이 되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압제하여 남의 권리를 늑탈하여 남의 재산을 속여 빼앗으며 남의 토지를 앗아가며,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망케 하니 그 흉측하고 악독함을 무엇이라 이르겠소’ 하는데 이르러서는 을사보호조약 이후에 이미 반신불수가 된 대한제국을 갖가지로 수탈하고 늑탈하는 일제의 행위들이 선연하고 그에 빌붙어서 알랑거리면서 제 동포를 착취하는데 앞장 선 친일 군상들의 모습이 명멸하는데, 그러한 광경들이 어제 오늘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노년의 답답한 가슴이 더욱 처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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