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故 알암 명노근 선생이 유명을 달리한 지 벌써 16년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도 더욱더 ‘털보다윗’이 그리운 건 오늘의 현실이 참 암울하기 때문일 것이다. 명노근 선생과도 같은 의인이 정말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광주의 대표적 민주인사인 고 알암 명노근 선생의 16주기 추모식이 9일 5.18국립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부른 찬송가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는 고 명노근 선생이 교육지표 사건으로 해직될 무렵 옥상 평상에 누워 즐겨 불렀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어처구니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고 선생께서 당장이라도 외칠 것 같다.
이어진 추도사에서 김성룡 목사는 “의인은 머리에 복을 이고 있으나, 악인은 입에 독을 머금고 있다. 의인은 칭찬을 받으며 기억되지만, 악인은 그 이름마저 사라진다(잠언 10:6~7)”는 성경을 인용하며 “추운 겨울에도 봄의 기운은 살아 움직이듯이 의인은 엄혹한 세상에도 죽지 않고 살아난다. 명노근 선생과 같은 의인이 필요한 오늘 더욱 그립다”고 말했다.
배종렬 전 의장은 “명노근 선생은 민주화운동도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도 많이 사랑했다. 또 안성례 장로는 사형선고를 받은 정동영과 배응준의 구명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고 회고했다.
이날 추모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후 끝났다.
고 명노근 선생은 1970년대부터 30년 동안 전남대학교 교수로서 대학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1980년 오월항쟁당시에는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한 민주인사였다. 또한 광주YMCA 부흥에 앞장섬은 물론 한국YMCA연맹 지도자로서도 활동했다.
수차례의 연행과 구금, 두 차례의 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명노근 선생은 부인 안성례 여사와 다섯 아이들을 곱게 키운 아버지이기도 했다. 딸들에게 잔심부름 한 번 시킨 적 없고, 반찬타박을 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검소했던 그는 혼자 있어도 즐거워하고, 남들과 함께 있으면 더욱 즐거워한 외유내강의 인물이었다.
이날 추모식에는 안성례 여사와 유가족을 비롯해 이홍길, 서경원, 배종렬 등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회원 50여명이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