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권의 책과의 만남
어떤 한 권의 책과의 만남
  • 김병욱 충남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5.12.23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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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명예교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은 20세기 사회인류학을 창시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폴랜드 출신 인류학자 브로 니스라프 카스파 말리노프스키의 대표적 저서이다. 그는 1884년 4월 7일 폴랜드에서 출생하여 1942년 5월 12일 미국 뉴 헤이븐에서 타계했다.

그의 학문적 이력도 다양하다. 그는 폴랜드에서 물리학 수학 방면의 철학박사를 취득하였고 후에 런던대에서 인류학 방면의 철학박사를 취득하였다. 나에겐 내 전공이 인류학이 아니지만 그에 대해 할 말이 너무나 많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대학 때의 은사 김열규 교수 때문이었고 1964년 이후 그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의 책은 특수한 전공서였지만 나에겐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주저인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을 1966년 2월 2일 마포와 충정로 중간쯤에 있는 헌책방에서 호화 양장본으로 구입했다. 이 책은 1922년 로트리지&케건폴에서 나왔는데 내가 산 책은 1950년 제 3판이니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말리노프스키의 대부분을 구입했고 그의 수제자인 뉴질란드 출신 레이먼드 퍼스가 편집한 <인간과 문화:말리노프스키 저작의 평가>라는 책도 1970년에 사서 열심히 읽었다. 그 덕분에 말리노프스키는 사회인류학 이외에 원시심리학, 법학, 언어학 등에서도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래에 말리노프스키의 주저인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을 비롯하여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전 3권)>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특히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은 이곳 전남대 출판부에서 인류학자인 최협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2013년)되었다.

참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한글만 잘 해독할 줄 알면 여러 방면의 고전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인류학은 제국주의 학문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전성기 시절 식민지 통치를 위한 학문으로 출발한 인류학 특히 사회인류학은 그 통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리노프스키의 여러 저서들에는 제국주의자의 시선이나 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토착인들을 방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였고, 객관성을 보이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다는 것을 그의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쓴 <원시 심리에 있어서의 신화>라는 소책자의 권두에 제임스 프레이저 경에 붙인 헌정의 글은 그의 인품과 학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는 프레이저의 <황금의 가지>를 읽고 인류학을 공부하기로 작심하였다. 말리노프스키에게는 당시 3권까지 나온 <황금의 가지>가 인생을 바꿔준 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말리노프스키의 저작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특히 신화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주술.과학.종교 그리고 그 밖의 논문>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내 대학원 논문 <상대 시가의 연구:구지가.해가.회소곡을 중심으로>에서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 나온 주술과 주사가 내 논문에 영감을 주었고 나의 학문적 여정에 커다란 전환점을 주었다.

지금은 나의 주 전공이 소설이지만 나는 지금도 원시 시가에 대해서 묘한 향수를 느낀다. 그리고 레이먼드 퍼스가 그의 스승 말리노프스키에 바친 책과 같이 나도 은사 김열규 선생의 학문 세계를 조명한 책을 상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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