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누정문화의 재조명6 - 누정과 문학
호남 누정문화의 재조명6 - 누정과 문학
  •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
  • 승인 2015.12.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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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식영정

<시민의 소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창의주도형 지원사업의 하나로 호남의 누정문화를 새롭게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누정문화가 단순히 옛 선조의 장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되살려 우리의 신문화로 정립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이번 기획에는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이 함께 했다. <편집자주>


⑥식영정

식영정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누정으로, 1560년 서하(棲霞) 김성원(金成遠)이 장인이자 스승인 석천(石泉)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것이다.

누정의 동쪽을 향해 고개를 들면 무등산의 꼭대기가 보이고, 누정 바로 건너에 있는 생태공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이 누정은 전라남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성원의 문집인《서하당유고》에는 “임억령이 담양부사를 그만두고, 성산(담양군 남면 지곡리의 옛 지명)과 고향인 해남을 오가며 지냈는데, 김성원이 그런 스승을 위해 이 누정을 짓고 임억령에게 기문과 누정 이름을 청하여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임억령의《식영정기(息影亭記)》에도 기록되어 있어 확인할 수 있다.

“그대는 장주(莊周)의 말을 들어봤는가? 장주가 말하기를, “옛날에 그림자를 무서워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낮에 달려가면 그림자는 더 빨리 달려서 그림자가 끝내 쉬지 않고 따라오다가 나무 그늘에 이르러서야 문득 보이지 않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무릇 그림자는 하나같이 사람을 따라다니므로 사람이 엎드리면 그림자도 엎드리고, 사람이 쳐다보면 그림자도 쳐다본다. 그 밖에도 가면 가고 쉬면 쉬니 오직 그의 형세가 그런 것이다. 그늘이나 밤에는 없어지고 불빛이나 낮에는 생기니 사람의 처세도 또한 이런 유(類)이다.

김성원이 장인이자 스승인 임억령에 부탁한 기문의 일부인데, 누정의 이름을 청하니 그는 장주의 말을 빌려 위와 같은 말로 대신하였다.
이에 김성원은 그림자는 스스로 할 수 없지만, 선생님은 세상에 버려진 것이 아니고, 다만 스스로 하신 것이니, 그 빛을 숨기고 자취를 감춘 것은 과단한 용기라고 말을 하자, 임억령은 다시 “흐름을 타면 나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그치는 것이니 가고 멈춤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니 내가 임야로 들어온 것도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한갓 그림자를 멈추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조물주와 무리가 되어서 대황(大荒)의 들판에서 노닐 적에 거꾸로 비친 그림자도 없어질 것이며, 사람이 바라보고도 가리킬 수 없을 것이니 이름을‘식영(息影)’이라고 함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식영정의 편액의 필체는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난 20세기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송곡(松谷) 안규동(安圭東, 1907~1987)의 필체이다. 그는 스스로 조형원리를 터득하여 이룬 ‘송곡체(松谷體)’라는 독창적인 서체를 창안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의 바탕이 된 곳이라 하여 세운 성산별곡시비(星山別曲詩碑)가 정자 바로 뒤에 세워져 있으며, 그 옆에는 500년이 넘었다는 소나무가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식영정 아래에는 서하(棲霞) 김성원(金成遠)이 지었다는 서하당이 최근에 복원되어 있고, 1973년 정철의 문집인《송강집》의 목판본을 보관했던 장서각 등이 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자미탄(紫薇灘), 방초주(芳草州), 서석대(瑞石臺) 등도 있었는데, 광주호가 생기면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곳에는 김성원의 작품을 비롯한 석천(石泉) 임억령(林億齡)과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제영시, 송강 정철과 정철의 후손인 소은(簫隱) 정민하(鄭敏河), 지산(芝山) 정해심(鄭海心), 수산(壽山) 정조원(鄭祚源), 석우(石友) 정해승(鄭海承), 그리고 퇴어(退漁) 김진상(金鎭商)등 총 1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누정에 걸린 임억령의 제영 시 중에 〈서석한운(瑞石閑雲)〉이라는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서석산의 한가한 구름 瑞石閑雲

뭉게뭉게 산마루에 이는 구름 溶溶岺上雲
잠깐 나타나다 다시 걷혀가니 纔出而還斂
그 누가 구름처럼 한가할까만 無事孰如雲
보고 있어도 싫증나지 않구나 相看兩不厭

김성원, 임억령, 고경명, 정철을 성산사선(星山四仙) 또는 식영정사선(息影亭四仙)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식영정을 사선정(四仙亭)이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이곳은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등이 왕래했던 곳으로, 호남가단의 한 맥인 식영정 가단이 형성되었던 곳이어서 그 의미가 크다.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문화재 보존의 하나로 시민의 소리와 함께 광주․담양의 8대 누정으로 선정한 독수정, 면앙정, 명옥헌, 소쇄원, 송강정, 식영정, 풍암정사, 환벽당에 걸린 모든 현판을 탈초 및 번역했다. 아울러 중국 관광객을 위한 누정홍보영상이 포함된 도록집 간행을 앞두고 있다.

http://www.memoryho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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