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송강호와 유아인의 쌍두마차, 쌍천만 명에서 3000만 명 돌파로?
@[사도] 송강호와 유아인의 쌍두마차, 쌍천만 명에서 3000만 명 돌파로?
  • 김영주
  • 승인 2015.09.2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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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의 역사를 소재로 삼을 때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이야기되는 사건이 ‘이성계와 태종 · 단종과 세조 · 연산군과 장녹수 · 숙종과 장희빈 · 영조와 사도세자 · 대원군과 민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만남에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게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이다. 이걸 정확하게 알아야 작가의 관점과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경우가 많아서, 팩트와 픽션을 가려낸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도 작품의 분위기를 보면, 그 어떤 작품이 팩트 쪽인지 픽션 쪽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팩트 쪽이다. 2000년에 들어서서 팩트와 픽션이 뒤엉킨 ‘팩션’이 워낙 유행을 타면서, 픽션이 너무 지나치고 그마저도 내공이 너무나 허술해서 팩트와 내공에 갈증이 많았는데, 이 영화가 팩트 쪽이고 내공도 상당히 높아서 무척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쌍두마차 송강호(영조)와 유아인(사도세자)의 연기력이 매우 돋보인다. 그 연기가 하도 실감나서 그 내용이 팩트인지 픽션인지 가름할 겨를이 없을 정도다. 이창동 감독의 데뷔 작품 [초록 물고기]에서 동네 양아치 조연으로 눈에 쏘옥 들어온 송강호,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 장교로 히트를 치면서 훌쩍 뛰어오르더니, 수많은 영화에 국민배우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동안 그의 연기에 감탄까지 하진 않았는데, [변호인]과 이 영화에선 감탄했다. [완득이]에서 홀딱 반한 유아인, ‘광팬’이라고 말할 순 없어도 ‘열렬팬’쯤은 되겠다. 그를 만나는 게 즐겁다 못해 정겨울 정도다. [베테랑]에서 악당 캐릭터로선 조금 서운했지만 이 영화에선 더 할 나위 없이 잘했다. 게다가 그 동안 역사드라마나 영화가 날 힘들게 했던 ‘무대 · 의상 · 분장 · 소품들’의 찐득한 거품들을 거두어내고 단정해져서 더욱 좋았다.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을 모은 바 있지만, 나는 그 동안 [라디오 스타]말고는 그의 작품에 항상 조금씩 서운했다. 이번에도 조금 서운한 게 있다. 특히 늙은이 분장에서 송강호는 좋았는데, 사도세자 어머니가 상당히 거슬렸고 마지막 장면의 혜경궁 문근영은 역겨울 정도로 거슬렸다. 조금 답답해 보일지라도, 차라리 카메라 앵글을 정면에서 잡지 말고 뒷면에서 잡는 게 훨씬 나았겠다. 정히 정면에서 잡더라도 멀리서 실루엣처럼 처리하지, 그걸 클로즈-업하여 어색한 눈물까지 보여준다. 아휴! 작은 실수 같지만, 마지막 장면인지라 “다 된 밥에 콧물 빠뜨린” 듯했다. 그래도 쌍두마차가 워낙 잘 이끌어서 ‘옥에 티’이겠다. 1주일 만에 관객 200만 명이 모여들었다니, 내용이 상당히 무겁긴 하지만 이런 기세라면 ‘1000만 명 달성’이 무난하겠다.  [암살]과 [베테랑]이 쌍천만 명을 이룩한 열기가 아직 손끝에 남았는데, 바로 뒤이어서 또 천만 명을 보탠다면, 삼천리강산의 오천 년 역사에 또 이런 일이 있었나? 우리 영화에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걸까?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85306&videoId=48827&t__nil_VideoList=thumbnail
 


“어떤 순간에도 엄숙한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 그리고 단 한 순간이라도 정겨운 아들이고 싶었던 사도세자” 사도세자의 죽음을, 해석하는 관점이 다양하다. 당파싸움의 희생양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영조의 권력욕이나 장기집권에서 비롯한 뒤틀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성리학의 완고함과 영조의 결벽증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고, 거기에 앞의 두 가지 요인이 촉매 작용을 했다고 본다. 성리학의 완고함은 숨 막힐 정도로 강렬하다. 성리학은 유가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맹자의 ‘치열한 순결성’을 추구한다. ‘대쪽 선비’, 이게 그냥 대쪽이 아니다. 좋은 쪽으로 나타나면 ‘사육신死六臣’과 같은 고결한 숭고함을 보여주지만, 나쁜 쪽으로 나타나면 ‘4대 사화士禍’처럼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온다.( 그래서 난 가을서리 같은 맹자보다는 봄바람 같은 공자를 더 좋아한다. ) 여기에 영조의 지나친 결벽증까지 겹쳐서 사도세자에게 혹독하게 몰아쳤다. 그런데 무인武人체질인 사도세자의 괄괄한 성격이 맞부딪히면서 초반부터 일찌감치 서로 엇갈리며 지나친 사랑이 지나친 미움으로 변해버렸고, 사도세자가 일방적이고 장기적으로 구석지에 몰려버렸다. 그 폭발력이 너무 커서, 주변의 측근들도 그 자체를 감당하여 해결하기보다는 그 파편에 다치지 않도록 자기 세력의 생존 쪽에 힘쓰다 보니 당파싸움의 빌미로 치달아버렸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갈등. 가장 가깝지만, 멀어지면 이런 웬수가 없다. 이렇게 ‘돈과 권력’에 환장한 ‘헬 조선’에서, 우리는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정신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수많은 가정이 깨지고, 이젠 그 최소한의 핵가족마저 해체되면서 사회적 트렌드로까지 치닫고 있다. 인류 5000년의 역사에 지난 500년 역사처럼 엄청난 변화가 없었고, 그 500년을 우리는 10배나 빨리 50년 만에 내달려왔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로도 부족하고 ‘격동 50년’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었다.” [사도]를 보면서, 내 아이들과의 갈등이 떠올랐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 그러나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다.”고 결론짓고 일치감치 접어버렸다. 어제는 TV에서 ‘트랜스젠더와 그 아빠’라는 다큐를 보면서, 순박한 아빠와 그 아이에게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갈등’만큼은 서로 잘 다독이며 보듬어가는 한가위가 되시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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