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 민족이에요(1) 아픈 역사 함께 나눈 고려인
우리도 한 민족이에요(1) 아픈 역사 함께 나눈 고려인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5.09.03 0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광주 정착한 지 3년 된 신마리나씨

고려인들은 대부분 우리말을 잘 못한다. 광주에 정착해서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도 우리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위치한 고려인마을 지역아동센터 문을 두드리자 고려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한 여성이 “여기 앉으세요”라는 말을 외국인처럼 어눌하게 말하면서 의자를 내어줬다. 하지만 외모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다.

그녀는 광주에 정착한 지 3년이 된 고려인 신마리나(39)씨다. 한국에 온지는 약 15년 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말이 서툴다. 그녀는 고려인 3세로 한국으로 오기 전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았다. 신마리나씨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역시 고려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을 때도 할머니에게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신마리나씨는 “할머니, 할아버지 서울에 있었어요. 그런데 전쟁했을 때 기차타고 만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다녔다고 말했어요”라며 “할머니는 죽기 전에 고향인 나라에 너무너무 가고 싶어했어요”라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친구(고려인)들도 한국이 좋다고 늘 말했어요”라고 할머니의 고향에서 사는 것을 꿈꿔왔다.

신마리나씨는 한국으로 오기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학교도 다니고, 학원에서 공부도, 레스토랑이나 골프장에서 일을 했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지금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01년 결혼을 하면서 한국에 오게 됐다.

결국 그녀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 신마리나씨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국의 땅을 밟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 할머니 너무 좋아했어요. 감동적이었어요”라고 표현이 서툴지만, 당시의 가슴 벅찬 순간이 전달되어 오는 듯 했다.

하지만 신마리나씨는 처음 한국으로 왔을 때 너무 집으로 가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한 탓에 F5비자(영주권 비자)를 받았지만, 충남 서천에서 살면서 너무 외로웠다.

주변에는 농사를 짓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 뿐 의사소통도 통하지 않았고, 고려인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광주로 온 뒤로는 신조야씨를 만나고 월곡동 고려인 마을에 거주하면서 생활이 달라졌다.

고려인마을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게 된 신마리나씨는 “신조야 집사님은 엄마처럼 너무 좋아요”라며 “지금도 고려인들이 비자 때문에 힘들어요. 비자 끝나면 애들도 데리고 가야하는데 한번 다녀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고려인도 동포인데 편하게 해주는 비자를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고려인인 그녀가 낳은 현재 14살의 외동딸은 완전 한국인이고, 그녀 역시 F5 영주권 비자로 좋은 상황이지만, 한 민족인 고려인들에게 지원이 부족한 것은 바뀌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아픈 역사를 함께한 고려인은 우리와 똑같은 한 민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강제 이주 등으로 어느 나라에서도 반겨주지 않아 모국을 되찾으려는 고려인들에 대한 정착제도가 너무 열악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