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사의 (見利思義)
견리사의 (見利思義)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08.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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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앞에는 10M나 되는 석비가 하나 있다. 비의 앞면에는 ‘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고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함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고 적혀 있다.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반에 중국 하얼빈 역에서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조선 침략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사살한 것이다. 안중근은 저격 후 당황한 빛 없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코레아 우라!’(대한만세의 러시아어)를 삼창한 후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여순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1910년 2월에 ‘견리사의 견위수명’ 글씨를 쓰고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 안중근은 3월26일에 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향년 32세였다.

‘견리사의 안위수명’의 원전은 <논어> ‘헌문’ 편이다. 이를 읽어보자.

자로가 완성된 사람(成人)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욕심 없음과 변장자의 용기와 염구의 재주를 가지고, 예악을 보태어 다듬는다면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오늘날의 완성된 사람은 어찌하여 꼭 그래야만 하겠는가? 이익을 보면 의리에 맞는 지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見利思義 見危授命),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한 그 말들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성인(成人)이라고 할 만 하다.”(久要不忘平生之言)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공자를 섬긴 이이다. 그는 위나라에서 벼슬하던 중 내란이 일어나 죽었는데 공자가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했다 한다.

한편 이(利)는 벼를 뜻하는 화(禾)와 칼을 뜻하는 도(刀)가 한 데 묶인 글자다. 농경사회에서 벼는 재물의 상징인데, 낫으로 벼를 베어 수확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익을 취한다는 의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재물을 취하려는 자는 칼날을 각오하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반면에 의(義)는 아(我)와 양(羊)이 결합된 글자이다. 양은 새의 깃털로 장식한 모양을 의미하며 본래는 위엄을 나타내는 모습이었다. 의(義)는 정의(正義)이다. 맹자는 “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바른 길(義, 人之正路也)‘이라고 하였다.

이와 의에 관하여는 맹자의 ‘하필왈리(何必曰利)’란 말이 유명하다.
<맹자> 책 첫 부분에 나온다.

양혜왕(梁惠王)이 천리 길을 온 맹자에게 말했다.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오셨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을 말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퇴계 이황(1501-1570)도 1568년에 16세의 선조에게 ‘사사로움’을 경계하라고 글을 올렸다.

사(私)는 마음을 파먹는 좀도둑이고 모든 악의 근본입니다. 옛날부터 나라가 잘 다스려진 날은 항상 적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파멸시키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모두 임금이 ‘사(私)’라는 한 글자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서도 혹시나 편벽된 사(私)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항상 조심하며 경계하거늘, 하물며 성인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이라도 충분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그렇다. 공직의 길은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다. ‘공직자’는 사익을 취할 일이 있더라도 그 이익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사업하는 친구가 상품권을 준다고 덥석 받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친하여도 진실로 호의를 베풀 이유는 없다. 때로는 곤욕으로 돌아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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