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삶속을 어슬렁거리는 친일의 유령
우리들 삶속을 어슬렁거리는 친일의 유령
  • 박호재 주필/시민의소리 부사장
  • 승인 2015.08.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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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광복절 전후로 늘 제기되는 이슈이긴 하지만 올해의 친일 논쟁은 유난히 뜨겁다.

몇가지 상황들이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우선 친일 수괴들을 척살하는 주제를 담고 있는 '암살' 이라는 영화가 1,0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때맞춰 박근령의 망언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일본에 위안부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니?

건국 이후 최고의 망언이라 기록해도 부족함이 없을 발언이다. 동생의 이런 망언을 두고도 침묵하는 박대통령이 또한 국민을 화나게 하고 있다. 본디 모든 일에 책임지지 않는 분이긴 하지만 이번의 침묵은 상당히 심각하다. 대통령의 가족이 국혼을 모독한 사건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 분 모두 만주군 군관의 따님들이라는 기억이 새삼 돌이켜질 수밖에 없다.

기름이 이렇게 부어지다보니 실제로 열을 받을 대로 받은 80객 노인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해 생명이 위태롭다. 그 분은 독립항일 운동가의 자손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나가 받은 돈을 쪼개 근로정신대할머니 시민모임에 매달 꼬박꼬박 후원했던 분이다 하니 그 진정성에 가슴이 아린다.

광복절 덕택에 정치권에서도 오랜만에 훈훈한 소식이 전해진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홍영표 의원이 조부의 친일행적을 공개 사과했다. 그의 조부는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에서 참의를 지냈다. 그의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마음에 여론도 우호적이다.

그러나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고 있다. 30여명의 친일 후손들이 정계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진 까닭이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 조차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실정이지만, 아직은 제2의 홍영표가 나올 기색은 없다. 광복절 행사장을 분주하게 찾아다니는 그분들 뒤꼭지가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하다.

그렇다면 국가 지도층 인사들까지 이렇게 친일행각에 둔감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을 단순히 과거사의 잘못된 일로만 여기는 경박한 역사인식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렇다면 독일과 이스라엘이 왜 지금까지 공소시효가 없는 법을 만들어 나치 협력자들을 체포해 재판에 넘기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지, 문화입국이라는 프랑스가 나치 협력자들을 왜 그다지 가혹하게 처단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친일에 대한 단죄는 단순히 과거사의 정리가 아닌 올바른 미래가치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친일의 후예들이 단죄는 커녕 이 나라의 여전한 위정자로 나서고, 그들의 정치 권력에 빌붙어 부역한 이들이 세속의 꼴단지를 독식하는 세태가 이어지며 무너지기 시작한 이땅의 가치붕괴 현상은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조롱하는 참혹한 지경에 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인문정신도, 정의를 갈구하는 마음도, 예의염치를 추구하는 마음도, 불의에 분연히 맞서는 마음도, 약자에 대한 연민도…그 어디에 발붙일 구석이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친일은 대대로 부를 일궜고, 항일은 후손에 남루한 삶만을 남겼다는 천박한 가치부재의 인식이 혁혁하게 대를 이어간 꼴이다.

때문에라도 엊그제 분신한 최 할아버지의 유서 한 구절이 가슴을 후빈다. 그는 '이기주의 때문에 이해관계로 싸움즐만 하고 남이야 어쨌건 나만 잘살면 된다는 세상' 을 통탄했다. 아직도 친일의 유령이 우리들 삶 속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해서는 안될 생각이지만 엇나간 세태를 보며 필자는 가끔 이렇게 자조하곤 한다. 일제 강점하로 다시 돌아간다면 친일 할 사람 여전히 참 많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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