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의 종언
86세대의 종언
  • 김상집
  • 승인 2015.07.3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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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대는 유럽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정치세력으로 불린다. 1968년 프랑스 5월혁명을 주도한 68세대는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체제에 도전했다. 기존의 사회질서에 정면으로 맞선 이들의 사회변혁운동은 유럽을 넘어 미국과 멕시코, 일본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68세대의 운동은 68혁명으로 불리며 세계적 차원의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학자인 월러스틴은 "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단언했다.

68년 1월 구정(설날) 대공세로 명명된 대대적인 베트남 인민의 공격은 전세계 학생과 시민들의 반전운동과 해방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고 이는 68혁명이 사회·문화혁명으로 프랑스나 유럽만이 아닌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68혁명으로 등장한 신좌파는 하나의 이념으로 결속된 단일세력이 아니었기에 노선에 따라 분화되었고, 이 가운데 <녹색당>은 프랑스와 독일에서 모두 좌파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했다. 68혁명이 유럽의 정치권을 완전히 뒤바꾸지는 못했어도 <녹색당>을 중심으로 한 70년대 말 ~ 80년대 초의 반핵평화운동은 1984년 유럽공동체에 「환경법」을 통과시켰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지구적 조용한 참살이 바람도 68혁명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반면 87년체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운동권 출신, 87년 당시 30대 386→40대 486→지금은 50대 586)는 동네북 처지다. 새정련 혁신위 30대 이동학 혁신위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586전상서’라는 글을 올려 86세대의 좌장격인 전대협 의장 출신의 이인영 의원(서울 구로갑)을 겨냥해 “86그룹은 후배 세대들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며 적진 출마를 제안했다.

80년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 임미애 혁신위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더 노골적이다. 지난 24일 “86세대는 아직도 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15년간 뭘 했느냐는 청년들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심지어 '86 숙주정치'라는 말까지 들려온다.”며 86세대그룹이 대안세력이 되기를 포기하고 ‘하청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맹비판을 한 것이다.

당내 계파 문제를 극복하기보다는 그 중간 보스가 돼서 타협정치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혁신위의 문제 제기 이전에도 당내에서는 활로 모색을 위해 86세대가 인적 쇄신을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86세대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로 정치권에 대거 입문했다. 청년 ‘386’은 이제 중년의 ‘586’으로 당의 중추가 됐는데도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 지난 4·29 재·보궐선거 이후 당내 분란 과정에서 86세대는 자기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87년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담론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직접행동 민주주의, 혁명적 투쟁을 중시한 68세대의 신좌파는 제도정치권에 참여하기보다 주로 반체제 비판세력으로 남았다. 그러나 68혁명의 영향을 크게 받은 환경운동단체들이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끌었고 <녹색당>은 좌파연립정부를 구성했고 반핵평화운동은 유럽공동체의 환경법을 이끌어내었다.

반면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낸 87년 민주항쟁의 주역으로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자부심 가득한 86세대는 초심을 잊고 진영논리에 갇혀 패권놀음에만 치중하다 개혁의 주체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벌써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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