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매드 맥스 4] ‘자동차 싸움’이 오락에서 예술로 승화했다!
강추@[매드 맥스 4] ‘자동차 싸움’이 오락에서 예술로 승화했다!
  • 김영주
  • 승인 2015.05.29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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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감추어진 먼 미래가 요한에게 계시되었다는 요한묵시록의 ‘인류의 멸망’을 뜻한다. 20세기에 들어선 뒤에, 우리 인간들이 하는 짓이 갈수록 더욱 깊은 죄악의 수렁에 빠져드는 듯해서 ‘인류의 종말’을 예감하는 이야기가 자주 나타난다. “인류의 종말 뒤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른바 ‘포스트 아포칼립스’이다. ‘인류의 종말’을 소재로 한 영화로 [터미네이터] [워터 월드] [투모로우] [2012년] [혹성탈출] [인터 스텔라]가 떠오른다. 그 내용의 기본줄기와 스타일이 1995년의 [워터 월드]가 [매드 맥스]와 아주 비슷하다. [워터 월드]는 지구 전체가 물바다로 덮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매드 맥스]는 지구 전체가 메마른 사막으로 덮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이다.



지구의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메마른 사막에서, 사람들은 물과 석유 그리고 식량을 서로 독차지하려고 발버둥 치며 완전히(Max) 미치광이(Mad)가 되었다. [매드 맥스]는 ‘자동차 싸움’으로 온통 뒤덮여 있다. ‘자동차 싸움’은 액션영화나 스파이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이다. 6070시절까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슬아슬한 운전이나 박치기 밀치기 액션에 차창 너머로 총을 쏘는 정도였는데, 80시절에 들어서서 기발한 장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맬 깁슨의 [매드 맥스]나 프랑스 코메디[택시]가 매우 그랬다. 그리고선 90시절 이후엔 제이슨 스타댐의 [트랜스포터]씨리즈와 빈 디젤의 [분노의 질주]씨리즈가 그랬고, ‘자동차 싸움’이 중심장면은 아니지만 멧 데이먼의 [본]씨리즈와 안젤리나 졸리의 [원티드]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자동차 싸움’만으로 말하면, [분노의 질주]와 이번 [매드 맥스]가 가장 두드러진다.

[분노의 질주]의 빈 디젤을 처음 만난 건 [트리플X]이다. 난 매끈한 근육의 육체미는 좋아하지만,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나 빈 디젤처럼 탱크형 육체미는 막무가내로 질긴 고기 덩어리 같아서 싫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다. 게다가 마구잡이 액션까지 겹치면 더욱 지겨워진다. 그런 막무가내 살집과 마구잡이 액션의 빈 디젤이 원초적으로 싫어서 그의 영화를 일부러 피했는데, [분노의 질주]가 재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만났다. 역시나 빈 디젤의 그 모습은 싫지만, ‘자동차 싸움’ 하나는 진짜 끝내주더라.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7편의 씨리즈에서 두어 개를 더 찾아보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장면들로 가슴을 조였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7편의 아부다비 고층빌딩 3개를 꿰뚫어가면서 박살내는 장면이다. 어찌나 기발하고 엄청난지 가슴이 터지려 하고 발끝이 저려왔다. “세상에나 저럴 수가?!” 앞으로 이보다 더 나은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가히 ‘자동차 싸움’의 종결이 아닐까? TV로 만났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이번 [매드 맥스]의 ‘자동차 싸움’이 [분노의 질주]에 막상막하였다. 2시간 내내, 숨 막히는 긴장감을 한 번도 놓아주지 않고 빡쎄게 몰아붙였다. 그 스릴과 서스펜스가 끝내준다. 굳이 비교하자면, 파워풀 강렬함은 [분노의 질주]가 좀 더 낫고, 다양한 자동차 액션은 [매드 맥스]가 좀 더 나은 듯하다. 그런데 그 다양한 자동차 액션이 단순한 눈요기 오락에서 품격있는 예술로 승화한 깊은 맛이 우러났다. 그런 폭력적 파괴나 난장판에 그 무슨 예술? 나는 ‘폭행과 전쟁’을 무조건 반대한다. “이 세상에 가장 재미난 게, 남의 집 불구경과 쌈구경이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폭행과 전쟁’이 저지르는 폐악이 너무나 크다. 그게 ‘자동차 싸움’이든 다른 형태든, 이런 장면들은 우리 주변의 ‘폭행이나 전쟁’을 줄여주는 쪽으로 작용할까? 더욱 조장하는 쪽으로 작용할까? 어느 순간 내 안에 치솟는 섬뜩한 ‘분노나 광기’의 악마를 만나노라면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점검해 보았다. 그걸 억지로 막는 건 잘못이다. 그 ‘분노나 광기’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 그게 얼마쯤 정당하다면 그대로 인정한 뒤에, 그게 엉뚱한 쪽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서 풀어내야 한다.

난 그 방법 중의 하나로 예술적 감흥 쪽으로 소화해낸다. 상당한 효험이 있다. 그래서 난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즐기는 걸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나의 영화이야기도 나의 심리치료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파토스Pathos에 관련된 일은 모두 예술과 연결할 수 있다. 술이나 파티와 놀이 또는 남녀사랑 그리고 종교도 그러하다.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갈 수도 있으니, 그게 강렬해질수록 더욱 삼가고 조심해서 좋은 쪽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심성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니까, 그 기준을 많은 사람이 동감하도록 잡아낸다는 게 매우 어렵다. 우선은 자기 자신이 기준이다. “그 작품이나 종교를 만난 뒤에, 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남에게 폐악을 저지르는 쪽으로 움직이는지 폐악을 줄여주는 쪽으로 움직이는지를 점검해 보아야한다.” 그리고 자기의 그 기준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안목을 긴 세월 속에서 천천히 깊이 숙성시켜야 한다. 이 설득력을 높인다는 게, 아주 아주 어려운 작업이지만 소홀해선 안 될 평생의 작업이다.

요즘 영화에서 아주 심한 욕설을 자주 만난다. 이걸 폭력이라고 해야 할까?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내공이 높은 감독은 욕설도 예술적이다. 감정적 소용돌이를 막무가내로 막으면, 오히려 심리적 변태를 일으켜서 엉뚱한 쪽으로 폭발한다.( 광신도들이나 일베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 이 세상에 분노나 폭행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걸 억지로 막는 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걸 스스로 적절하게 소화해내서 조절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예술작품의 역할이다. 백 마디 ‘옳은 말씀’보다는, 한 가락의 노래나 한 줄의 시 또는 한 장면의 감동이나 한 그릇의 국물 맛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냉철한 이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열정한 감성이 항상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대중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등급이 낮을수록 심리치료 효과가 낮고 오히려 심리를 더욱 병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등급이 높은 작품을 자주 만나야 한다.( 클래식이나 천재와 유명인의 작품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 지난 번 영화이야기에서 현대예술을 비난한 것은 그게 인간 심리를 더욱 나쁜 쪽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매드 맥스]는 ‘자동차 싸움’이 출중하지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솜씨에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고, 무엇보다도 샤를리즈 테론의 강렬한 연기가 매우 돋보였다. ‘자동차 싸움’이 다른 영화보다 무엇이 얼마나 출중한지를 말하려면 다른 영화의 그 장면들과 낱낱이 비교해야 하니 매우 번거롭다. 그 등급이, 80시절 [매드 맥스]는 낮았지만, 이번 [매드 맥스]는 사뭇 높아졌다. 영화관에서 크고 넓은 화면과 싸운드로 직접 느껴보시라!  파워풀 재미가 정말 대단하다. * 대중재미 A특급,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민주파 B0.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4361&videoId=47634&t__nil_VideoList=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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