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압력(Peer Pressure)
또래 압력(Peer Pressure)
  • 탁혜성
  • 승인 2015.04.09 11:0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탁혜성 전시감독

영어에 “Peer Pressure” 이라는 말이 있다.  “또래 압력: 동료〔또래〕 집단으로부터 동일 행동을 하도록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단순히 말해서 또래 집단에서 따로 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앞집 순이도 새 자전거를 샀고, 뒷집 돌이도 새 자전거를 샀고, 옆집 영희도 새 자전거를 샀다면 나도 사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물건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이 전부 록을 좋아한다면 내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비슷해져야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TV 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룹의 다른 사람들과는 모두 미리 짜고 오직 한 명만을 새로 그룹에 참가시킨다. 사회자가 OX 문제를 내면 나머지 그룹은 이미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같은 답을 내는데, 문제는 이들이 모두 틀린 답을 말하는 것이다. 
모두 알 만한 쉬운 문제들이므로 영문을 모르는 한 사람은 처음에는 웃어넘기지만 세 번, 네 번 상황이 반복되면 오히려 정답을 내는 사람이 불안감을 느낀다.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오답인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과 같이 오답을 쓴 피켓을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다수결 원칙이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다수결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수의 무지함이 소수의 정의를 밀어붙이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토론의 문화에서 오지 않을까 한다.
토론은 나와 네가 같지 않음에서 시작한다. 서로 같다면 토론을 할 이유가 없다. 서로 다르지만 공동의 선을 위해 합일점을 찾아가는 노력. 그 노력을 나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토론을 할 줄 모른다. 아니 더 정확히 토론을 즐길 줄 모른다. 다른 끝에서 시작하여 어느 곳에선가 서로 만나는 기쁨을 모른다. 그저 끝에 서서 네가 왜 이리로 오지 않느냐고 소리친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극단적인 생각에는 양보가 설 자리가 없다. 나이로 밀고 사람 수로 밀고. 공허한 힘겨루기가 되는 토론처럼 재미없는 것이 없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고 굳이 나서 정을 맞을 필요가 없다고 교육 받아온 우리는 입 다무는 편이 상책이라는 것을 안다. 불확실한 모험을 하느니 좀 불편해도 참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얼마나 분명하게 “아니요”라고 말하며 살아왔을까? “Peer Pressure”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힘은 “아니요”라고 외칠 수 있는 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4월 29일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 야권에 서로 다른 의견이 분분하다.문화전당의 미래와 도시 만들기 등 사람과 자금이 몰리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견들이 부딪친다.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보고 이타적인 생각을 하는 리더들을 골라내기 좋은 시점이 아닐까?
눈앞의 이익만 찾는 고집스럽게 닫힌 사람이 아니라 열려있는 믿음과 확신 그리고 무엇보다 “대안”을 가지고 설득하고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Peer Pressure“에 흔들리지 않고, 할 말 하는 리더쉽이 그리운 시기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kiatigersfan 2021-11-12 15:03:42
학원숙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