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은 기계게임? 정치게임?
@[이미테이션 게임]은 기계게임? 정치게임?
  • 김영주
  • 승인 2015.03.05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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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엔 이 일 저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할 몸과 맘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주말에야 영화 둘을 한꺼번에 보았다. 너무나 재미없어서 욕설을 퍼부은 [조선탐정2]와 너무나 재밌고 맘에 쏙 들어온 [이미테이션 게임]. [조선탐정2]처럼 아무런 맛도 없는 이런 개뼈다귀가 어디에 또 있을까? “이런 영화가 망해야, 우리 영화가 산다!” 더 말하면 내 입만 아프니, 그만 하겠다. 뒤이어 만난 [이미테이션 게임]의 모든 게 하도 좋아서 [조선탐정2]로 똥 밟은 심정이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앤드류 호지스의 소설 [앨런 튜링 : 에니그마]를 각색해서 만든 영화인데,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제목은 튜링의 논문 “Computing Machine and Intelligence”에서 “기계도 생각한다.”고 주장하면서 만든 용어란다. 그러니까 기계로 인공지능을 최초로 시도한 ‘컴퓨터의 아버지’인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인생을 그린 영화이다. 그는 2차대전에서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풀어내는 기계를 개발하여 독일 패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플 마인드]와 내용도 엇비슷하고 연출 스타일도 아주 비슷해 보인다.
 
 

“길가에 널린 돌맹이도 인간의 손에 들어가면 정치다.” 여기에서 ‘정치’란,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돌맹이가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순간,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그 희로애락으로 얼룩지는 온갖 인간사에 휘말려든다는 뜻이다. 수학과 암호학이나 퍼즐게임과 해독기계 그리고 튜링이 산책하는 숲길이나 호프집 테이블에 놓인 맥주 한 잔 · · · 도 돌맹이처럼 인간사의 희로애락과 아무런 상관없이 단순한 물건이다. 그러나 영국이 독일을 이기려고 튜링에게 에니그마의 암호를 풀어내는 임무를 맡기는 순간, 그 물건들이 튜링과 그의 동료들과 함께 영국과 독일 그리고 지구촌의 인류와 관계를 맺으며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얽혀든다. 그래서 “인간이 살아가는 게 모두 다, 정치가 아닌 게 없다.” 어느 날, 튜링은 영국과 독일과 소련 사이에 벌어지는 정보전쟁 속에서 스파이사건에 휘말려든다. “나는 소련스파이가 아니다. 수학자이다.”고 항변한다. “수학자이다.”는 말은 “난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국제시장]이 ‘박정희 독재’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윤제균 감독은 “어려웠던 그 시절 당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를 바라보며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 고마움을 전하고자 만든 영화다.”고 답하며 정치적인 해석을 불편해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작품이든 그 작가의 관점과 강조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정치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난 [국제시장]을 ‘보수파 영화’로 본다. 이것을 “지금 우리나라 보수파가 좋은 쪽으로 가고 있을까? 나쁜 쪽으로 가고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의 대중재미나 작품성이 높을까? 낮을까?”에 관련지어서 설왕설래하는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다. 튜링은 정치적으로 “보수파일까? 민주파일까? 사회파일까?”, 그리고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보수파일까? 민주파일까? 사회파일까?”

천재 이야기를 “그는 떡잎부터 남달랐다.”면서 그의 타고난 재능의 놀라움을 찬양하며 그가 이룩한 영웅적인 업적을 기리는 쪽으로 영화를 만들면 보수파이고, 그의 타고난 재능 뒤에 숨겨진 어두운 그늘에서 빚어지는 갖은 시련을 강조하는 쪽으로 영화를 만들면 민주파이며, 그의 타고난 재능을 둘러싸고 상류층이 장난질을 하면서 한 개인을 파멸시키거나 세상을 어둠의 수렁으로 빠뜨린다는 쪽으로 영화를 만들면 사회파이다. 그렇다면 [뷰티풀 마인드]는 민주파에서 보수파 쪽을 향한 영화이고, 이 영화는 민주파에서 사회파 쪽을 향한 영화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그건 하루아침에 몇몇 사람의 몇 마디 말로 결정나는 게 아니다. 그 주인공들이 살던 시대상의 팩트가 있고, 그걸 소재로 작품을 만든 작가나 감독들이 자기가 살던 시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른 강조점이 있으며, 그 작품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각이 있다. 이런 점들을 두루 아우르며 살펴야 한다. 작품들에 대한 논쟁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좋다. 그 논쟁의 수준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준에 달려있다.

* 대중재미 B+(내 재미 A+), * 영화기술 A특급,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특급. 내게 민주파에서 사회파 쪽을 향하는 성향이 있어서 이 영화에 만족을 넘어서서 흡족하기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신들린 연기와 수많은 조연들의 더 할 나위 없이 적절한 뒷받침이 대단했다. 게다가 그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게 시나리오이다. 원작 소설이 훌륭했겠지만, 이만큼 돋보일 정도로 잘 각색한 시나리오를 써낸다는 건 사뭇 어려운 일이다. 도중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이게 감독의 능력일까? 시나리오 작가의 능력일까? 찾아보았더니, 그레이엄 무어의 각색상이 두드러졌다. “좋은 감독과 좋은 작품엔, 좋은 시나리오가 필수!” 영화감독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83642&videoId=46955&t__nil_VideoList=thumbn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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