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어머니집, 유산을 넘어 인권의 세계화로
오월어머니집, 유산을 넘어 인권의 세계화로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5.03.04 0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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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숙, ‘오월어머니집 형성에 관한 연구’ 눈길
▲ 노영숙 오월어머니집 사무총장

1980년 5.18항쟁기간 시위대에 주먹밥과 음료수를 건네주었던 당시 광주의 어머니들은 이후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현재 국가와 이웃 국민들로부터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푸는 데 도움이 될 논문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오월어머니집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노영숙씨는 2015년도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석사학위 논문으로 광주 어머니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과 역사적 의의에 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오월어머니집 형성에 관한 연구(지도교수 정치외교학과 윤성석)’를 내놓았다.

노영숙씨는 논문에서 1980년도 5.18 항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광주 여성들의 수난과 피해, 민주화에의 공헌, 그리고 이후 지방자치단체와의 공동생산자로서의 역할까지를 역사적 사실과 스토리텔링 기법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오월어머니집의 역사적인 형성과정을 태동기(1980-1983), 저항기(1983-2000), 그리고 성장기(2000년 이후)로 구분하고 있다. 태동기에 관한 그간의 사례연구와 자신의 자료 수집을 통해 5.18 당시의 여성의 피해와 참여 그리고 여성인권 NGO의 역할을 정리하고 있다.

1980년도 가장 먼저 창설된 단체 ‘5.18 구속자 가족회’

저자에 따르면 1980년 5월에 광주의 여성들은 공수부대의 폭력으로 참담한 피해를 입었으나, 한편으로 홍보, 선전 및 동원 그리고 항쟁지도부에의 참여 등을 통해 항쟁에 참여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5월 항쟁 이후에 각종 5·18단체가 창립되어 오늘에는 수십 개 단체로 성장하였으나, 1980년도 정치적 암흑 상황에서 가장 먼저 창설된 단체가 바로 ‘5.18 구속자 가족회’라는 사실이다.

1980년 5월 27일에 시민군이 모여 항쟁하였던 도청지도부가 진압군에 의해 와해되고 수많은 관련자들이 구속 수감되었다. 1980년 6월이 되어 5월 항쟁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시점에 구속자 가족들이 서로 만나 위로해주고 석방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권 NGO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1980년 6월 상무대 군사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 ‘5.18 구속자 가족회’는 구속자 석방운동의 정당성을 고양하고자 5.18광주에 대한 진실을 제작하여 국내외 각지에 배포했다. 그리고 여러 종교단체 및 국내외 민주 인권단체와 연대하였다.

대표적으로 1981년 2월에 5공의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금남로 YMCA앞에서 미리 준비한 ‘5.18 구속자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도청을 향하던 전두환 차량을 향해 돌진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구속자가족들이 주도한 안기부 앞 농성, 미문화원 점거 농성, 그리고 명동성당 단식농성은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는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못했으나 종교 단체와 세계의 많은 양심세력에 알려지면서 광주항쟁의 상흔과 유산을 국내외에 더욱 전파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이후 1983년부터 5.18 구속자 가족회는 광주의 민가협(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으로 확대 개편되어 저항적인 인권 NGO 역할에 매진하여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하게 된다. 이러한 내적 변화는 한국의 민주화의 이행 및 공고화 진척과 관련이 깊다.

2000년 5월, 오월여성회 창설

5.18관련 구속자가 전원 석방이 되고 이후 90년대에 들어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국정목표에 의해 12.12 쿠데타와 5.17 계엄령은 불법적인 군사변란으로 뒤늦게나마 재정립되었다.

또한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2002년 노무현 참여정부의 등극을 기점으로 오월 여성가족들도 정계에 진출하여 5월 항쟁특위 활동 등을 담당하였다.

5.18 구속자 가족회의 원년 멤버 10여명은 광주 항쟁 20주년이 되는 2000년 5월에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시키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오월여성회’를 창설했다.

과거 ‘5.18 구속자 가족회’로부터 이어져 왔던 민가협 회원들은 자연스럽게 오월여성회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마침 젊은 독지가들이 2006년도에 장동에 작은 한옥을 마련해 주어 드디어 오월어머니집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21세기 글로벌 인권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오월어머니집의 역할은 더 이상 반국가적 NGO의 기능에 한정되지 않고 광주를 대표하는 여성인권 NGO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우선적으로 5.18정신의 함양을 위한 인권센터로서의 역할과 심신이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들을 위한 재활센터 기능을 주요한 내적 활동영역으로 설정하는 한편, 아시아와 세계의 인권 탄압의 현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아르헨티나와 미얀마, 이란, 그리고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여성인권 NGO와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는 대외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월어머니집과 지방자치단체, 공동생산자 관계

이 논문의 특징은 오월어머니집과 지방자치단체간의 동반 관계를 광주도시발전을 위한 공동생산자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건설을 추구하고 있는 광주시청은 오월어머니집 구축을 도시발전을 위한 공동생산의 과제로 인식하고 행․재정적 지원을 시작해왔다고 해석된다.

이에 인권도시 건설이 아시아문화전당 건설사업의 중요한 축으로 설정되던 차에 2012년 양림동에 오월어머니집 건설이 시작되어 마침내 2014년 5월에 개관식을 치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래지향적인 오월어머니집과 광주시청과의 NGO-지자체 파트너십의 방향과 내용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2011년 5월에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5․18의 국제화 사업을 더욱 강화해야 됨을 제언하고 있다. 특히 광주가 추구하는 아시아문화중심 프로젝트에서 향후 아시아 인권헌장의 제정과 더불어 아시아 인권레짐의 형성에 광주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건설을 진두지휘하는 광주 지방정부와 인권 NGO는 인권사각지대인 아시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적 차원의 정부 간 인권기구는 유럽, 미주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구축되어 있다. 지역인권제도는 각종 분쟁이 발생하는 국제사회에서 효율적인 국제인권제도의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아시아는 지역적 인권보호체제가 존재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아시아 인권레짐, 상향식 접근이 더 효율적

따라서 국가 간에 드러나는 이러한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통합적인 아시아 인권레짐을 형성할 수 있는 방안은 정부주도 접근으로는 여러 장벽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상향식 접근이 더 효율적이다.

현실적으로 아시아의 지역적 인권레짐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 구축되기 어렵기 때문에 NGO, 국제기구 및 조정국가들의 참여와 국제적 네트워킹을 통한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광주가 아시아를 선도하는 인권도시로서의 세계적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광주의 아시아 문화전당 내에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권사각지대에 있는 인권빈곤국가의 후속세대를 교육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 인권레짐 형성을 위해 인권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인권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할 필요가 있다. 즉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아시아 인권레짐의 형성과 인권헌장의 제정을 향하여 광주광역시와 오월어머니집 사이에 강력하고 포괄적인 연대와 동반 관계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오월어머니집은 과거의 상흔을 딛고 지자체와 연대하여 생산자로서의 새로운 역할에 충실할 시대적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역할이 양림동을 오늘도 찾아오는 수많은 내방객들이 원하는 오월어머니집의 유산과 전통에서 발현되고 있음을 저자는 직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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