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 대해부(7-3) 우리는 ‘5.18기념재단’을 기억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대해부(7-3) 우리는 ‘5.18기념재단’을 기억하고 있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5.02.13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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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윤광장 이사장 (임기 2008.04.16~2010.12)
자체 수익사업 통해 조직 ‘안정화’ 방안 찾길

<시민의소리>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해 역대 5.18기념재단의 이사장을 만나 재임시절 이야기와 5.18기념재단의 향후 발전방안에 대해 듣기로 했다. 그러나 몇 명의 이사장은 5.18관련 단체와의 마찰, 끈질긴 언론의 무분별한 질타로 인해 다시 한 번 언론에 노출 되는 것에 대해 손사레를 치기도 했다. 우여곡절 속에 어렵사리 연결된 7대 박석무 이사장, 8대 이홍길 이사장, 9대 윤광장 이사장을 만나 5.18기념재단에 관련한 공통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사실 그대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5.18기념재단 9대 윤광장 이사장
▲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취임 전 80년 5.18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하셨는지.
- 저는 74년 민청학력이 터지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80년 이전 삼봉조합, 엠네스티 활동을 하면서 박석무 등과 관계를 맺으며 뜻을 같이 가지고 활동했다.

이후 전남대 농과대 총책이자 학생운동을 하던 동생 윤한봉은 민청학년으로 옥고를 치르게 됐다. 당시 대동고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던 저는 한 달에 1번씩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에게 면회를 갔었다. 그러나 윤한봉이 수감되고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를 여의게 됐다. 그 이후로부터 인생은 달라졌다. 박정희 정권이 아버지를 앗아갔구나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민주화에 뜻을 함께하는 운동가들과 교사들이 함께 YWCA에 양서협동조합을 만들어 광주의 사랑방이라고 부르며 활동했었다. 당시 70~80년대 사회운동을 하던 시절은 지금과는 달리 정말 따뜻했었다.

80년 5.18로 계엄령이 내려진 후 대동고 학생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하교시키고 23일 의기투합해 YWCA에서 수습 논의를 했다. 결국 27일 새벽 피의 진압이 있었다. 이후 경찰서 정보과에 있는 친구를 통해 명단에서 이름을 몰래 지워놓았다는 말에 안심하고 있었으나 29일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쳐 잡혀가게 됐었다.

▲ 이사장직 임기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들에 대해 말해주신다면.
-이사장을 맡았지만 교사출신 교육자이기 때문에 후대에 5.18을 대대손손 이어갈 방법은 교육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초등용, 중등용 5.18교과서를 만들어 냈다. 당시 교육감에게 이 교과서가 채택될 수 있도록 부탁을 하기도 했다.
이후 광주, 전남, 전북, 경기, 서울, 강원 등 6개 시도에 사회운동에 관심 있던 분들이 찾아내 이 교과서를 학생들이 읽게 해달라 뛰어다녔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경기도내 초·중·고 공·사립을 막론하고 우선 2권씩 도서관에 배치하고, 그 이후 1년 만에 대부분의 학교에 장서로 갖추도록 적극성을 보여준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는 재임 시절 도청 별관문제가 결부되어서 가장 발목 잡혀서 하고 싶은 일을 못했던 것이다. 도청별관은 역사적 산물로 풀뿌리 하나, 기왓장 하나라도 손대지 말자고 주장했었다. 물론 예술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을 자체로 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당이 들어서면서 콘크리트 덩어리다, 부실덩어리라는 말도 많았지만, 도청별관은 80년 5.18의 역사적 상징성을 담은 유형적 유산이다.
예를 들면 독일의 베를린 장벽도 콘크리트 덩어리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5.18도 기록물만 유네스코에 남길 것이 아니라 보존 건물도 손 대지 말고 문화유산이 되도록 해야 했지만 결국은 현재 전당이 들어서면서 가운데가 잘렸다.

▲ 앞으로 5.18기념재단의 발전을 위해 향후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 우선 재단운영에 있어 양면성이 있다. 5.18 재단은 이 상태로 가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재정적인 안정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안정이 없다. 자본이 없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 지원금이 끊어지게 된다면 몇 년 못가서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첫째는 재단이 앞으로도 지속적, 연속적으로 5.18 정신을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어야한다. 앞으로. 민주정부가 들어서지 않고 이대로 친독재정부가 계속 이어가게 된다면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재정적인 자립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또 하나는 재임기간에도 그랬지만 다른 이시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5.18역사 교육에 치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5.18교육관을 활용해 전국 외부의 청소년들이 와서 5.18 정신을 광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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