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을 다시 본다(4)
을사늑약을 다시 본다(4)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02.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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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이토 히로부미가 가결을 선언하자, 참정대신 한규설은 의자에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그러자 이토가 제지하며 짜증스럽게, ‘어찌 웁니까?’ 하였다.

이완용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은 조약의 자구(字句) 수정에 매달렸다. 갑자기 한규설이 소리를 지르며 슬프게 통곡하였다. 회의는 잠시 중단되었고, 한규설은 별실로 끌려갔다.
이때 이토는 “너무 떼를 쓰는 모양을 하면 죽이겠다.”며 모두 들으라는 듯이 엄포를 놓았다. 대신들은 겁에 질렸고 이후 조약체결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편 한규설과 관련된 1905년 11월20일자 황성신문 기사에는 한규설과 이토의 대화가 자세히 실려 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인용함)

한규설이 몸을 일으켜 임금을 뵈려고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곁방으로 들어갔는데, 잠시 뒤 추원수일이 일본 순찰병을 이끌고 한규설을 붙잡아 수옥헌 곁방에 가둔 뒤 좌우에서 지켰다.
이토가 들어와 한규설을 보고 온갖 협박과 유혹으로 달래자 한규설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나는 이 몸으로 순국할 것을 결심하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소?” 이토가 화를 내며 말했다. “칙령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한규설이 말했다. “사직은 중한 것이고 임금은 가벼운바 비록 칙령이 있다 할지라도 결단코 받들 수 없다.”

이토가 크게 노하여 “그렇다면 이는 불충한 신하이다”라고 말하고 나가버렸다. 이토는 궁내부대신 이재극을 시켜 고종에게 “한규설은 칙령을 받지 못하겠다고 하니, 대역불충입니다. 파면하소서.”하였다.

실제로 한규설은 고종의 지척에서 행동이 온당하지 못했다 하여 파면되었고 3년 유배형에 처해졌다.

한편 고종이 조약을 재가하였는지는 엇갈린다. 12월16일에 을사오적이 올린 상소문에는 고종의 재가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토 대사가 직접 붓을 들고 신들이 말하는 대로 조약 초고를 개정하고 곧 폐하께 바쳐서 보고하도록 하여 모두 통촉을 받았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부강해진 다음에는 이 조약이 당연히 무효로 되어야 하니 이러한 뜻의 문구를 따로 첨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하여 다시 폐하의 칙령을 전하니 대사가 또 직접 붓을 들어 더 적어 넣어서 다시 폐하께서 보도록 하였으며, 결국 조인하는 데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농상공부 대신 권중현이 11월25일에 올린 상소에는 고종의 재가를 얻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날 새벽에 외부의 인장이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은 이름을 기록하고 날인을 하게까지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해보면 이것이 실로 얼마나 중대한 사건인데 폐하의 결재도 거치지 않고 대뜸 조인을 해서 서로 교환한단 말입니까?”

이 두 기록을 비교하여 보면 권중현의 상소가 더 신뢰가 간다.

이토는 일본 공사관의 통역 마에마 교사쿠와 외부 보좌원 누마노 등과 일본군인 수십 명으로 하여금 외부 外部로 달려가서 외부대신의 직인을 탈취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약에 날인했다. 을사늑약이 조인된 시간은 11월 18일 오전 1시 반경이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은 이렇게 개탄하였다 한다.(11월20일자 일본공사관 기록)

“이와 같이 중요한 조약을 그처럼 쉽게 급박하게 동의하다니, 천세에 남을 한이로다. … 대신들의 무능과 무기력은 견딜 수 없다.”

이후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친서를 보내 을사늑약 무효 투쟁을 하였으나 묵살 당했다. 국제정세는 그만큼 냉혹하였다. 1907년 6월에 고종은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 이위종 ․ 이준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늑약 체결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헤이그 밀사 사건은 결국 고종 퇴위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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