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을 다시 본다(3)
을사늑약을 다시 본다(3)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01.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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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1월 17일 오후 4시경 시작된 어전회의는 7시가 넘어서 끝나고 대신들이 물러났다. 그런데 고종은 참정대신 한규설과 외부대신 박제순을 다시 불러 비밀 명령을 내렸다.
한규설이 나오자 하야시 일본공사가 회의결과를 물었다. 한규설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뜻으로 지시 하셨으나, 대신 8인은 모두 반대하는 뜻으로 거듭 말하였습니다.’라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이에 하야시 공사가 한규설을 질책하였다.
“폐하가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지시하였다면 조약을 순조롭게 진행하여야지, 여러 대신이 모두 폐하의 명을 어기니 어찌된 일입니까? 이러한 대신들은 결코 조정에 두어서는 안 되며 특히 참정대신과 외부대신은 그만두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한규설이 몸을 일으키면서, “공사가 이렇게 말하니 나는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여러 대신들이 만류하면서 ‘공사의 한 마디 말을 가지고 참정대신이 자리를 피한다면 그것은 사리와 체면에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한규설은 다시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대신들이 조약 체결을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자, 하야시 일본공사는 매우 다급하였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긴급 연락하였다. 이토는 8시쯤에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와 일본군 헌병사령관, 군사령부 부관들을 거느리고 황급히 덕수궁 수옥헌으로 들어왔다. 이미 대궐 안팎은 중무장한 일본군이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포위하여 공포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토는 궁내부대신 이재극을 통해 고종에게 알현을 요청하였다. 직접 담판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종은 “대신들에게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고 하였고, 지금 후두부에 종기가 생겨 접견 할 수 없으니 이토 대사가 중간에 서서 타협의 방도를 강구해주기 바란다.”는 전갈을 보냈다.
이윽고 이토는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8명의 대신들을 일일이 호명해 가며 찬성과 반대를 물었다. 참, 어이가 없다. 일본 특파대사가 대한제국의 대신을 쥐락펴락하다니, 이토는 먼저 참정대신 한규설에게 물었다.
한규설이 말하기를, ‘나는 다만 반대한다고만 상주(上奏)하였습니다.’하니, 이토가 다시 “무엇 때문에 반대한다고 하였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자, 한규설은 “설명할 만한 것은 없고, 단지 반대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이토는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박제순이 대답하기를, ‘내가 외부대신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외교권이 넘어가는 것을 어찌 감히 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명령이라면 어찌할 수 없지 않는가.”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토가 말하기를, ‘이미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명령이 있었으니 외부대신은 찬성입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 다음에는 탁지부대신 민영기에게 물었다. 민영기는 ‘나는 반대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토가 ‘절대 반대입니까?’라고 다시 묻자, 민영기는 ‘그렇습니다.’라고 확실히 답변하였다.
이어서 법부대신 이하영은 ‘지금의 세계정세와 동양의 형편 그리고 대사가 이번에 온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루어진 의정서와 협정서가 있는데 이제 또 외교권을 넘기라고 합니까? 우리나라의 체통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이니 승낙할 수 없습니다.’ 하니, 대사가 말하기를, ‘그렇지만 이미 대세와 형편을 안다고 하니, 또한 찬성하는 편입니다.’ 하였다.
다음으로 이토는 학부대신 이완용에게 물었다. 이완용은 어전회의에서 자신이 한 발언을 대강 설명한 다음에 이렇게 말을 보탰다.
“이번 일본의 요구는 대세 상 부득이한 것이다. 종전의 우리 외교의 변화가 심했던 탓으로 일본은 두 차례나 큰 전쟁을 치렀다. 일본은 더 이상 동양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없어 이번 요구를 제기한 것이다. 일본은 이번에는 반드시 목적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 할 수 없을진대 원만히 타협하여 일본의 제의를 수용하고 우리의 요구도 제기하여 관철하는 것이 좋다. 자구 등은 다소 수정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이완용은 어전회의에서 대신들이 반대하자고 결의한 사항을 한순간에 뒤집었다. 대세, 국력 운운하며 괴변을 늘어놓으면서 기막히게 변신한 것이다.
이완용의 말이 끝나자 이토는 “조약 중에 고칠 만한 곳은 고치면 되니, 과연 당신은 완전 동의로 인정하겠소.”라고 만족감을 표시하였다.
이어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에게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연석에서 면대하였을 때에 대체로 학부대신과 같은 뜻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딴 의견은 바로 황실의 존엄과 안녕에 대한 문구였다." 대사가 말하기를, ‘황실의 존엄과 안녕 등에 대한 문구는 보탤 수 있는 문구이니 이 또한 찬성입니다.’하였다.
또한 이근택과 이지용에게 물으니 ‘나도 학부대신 이완용과 같은 뜻이라고 대답하여, 이토는 ’찬성‘이라고 판정하였다.
대신들과의 찬반여부에 대한 문답이 끝나자, 이토는 궁내부 대신 이재극을 불러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지시를 받아 각 대신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반대한다고 확실히 말한 사람은 오직 참정대신과 탁지부 대신뿐이다. 찬성 6인 반대 2인으로 다수결로 가결이 되었으니 주무대신에게 지시를 내리시어 속히 조인하도록 주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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