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작가들의 꿈을 읽는 날갯짓
학생작가들의 꿈을 읽는 날갯짓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12.23 2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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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재밌게 표현
근로정신대 할머니 자서전 눈길끌어
장애학생작가의 동심을 엿보다

요즘 광주는 청년작가 붐이 일고 있다. 청년작가들의 역량을 키우는 활동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유스퀘어 문화관에서는 매달 청년작가전을 열고 있으며, 광주시립미술관도 해마다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가는 지역 청년작가를 선정해 초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작가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꽤나 생소한 말이다. 특히 대학생도 아닌 중·고등학생들이 책을 펴낸다면 주목받을 일임엔 분명하다.

23일 오후, 광주시교육청 2층 대회의실이 시끌벅적거렸다. 웅성거림과 박수소리가 복도 저 멀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대회의실 안에는 중·고등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 작가들의 꿈을 읽다’라는 주제로 2014년 인문 책 쓰기 동아리 출판기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7개 고등학교와 3개 중학교의 책 쓰기 동아리에서 각각 1권에서 많게는 4권까지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 책을 펴냈다.

출판기념회가 시작되고 사회자가 ‘학생’이라고 소개하자 뒤에서 누군가 “작가 아닙니까, 작가!”라고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장휘국 교육감이 작은 선물을 학생작가들에게 전달한 후, 석산고등학교와 상일여자고등학교, 그리고 운남중학교에서 책을 만드는 과정과 자체적인 평가 등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들만의 가능성 발견 꿈꾸다

▲안현 석산고등학교 학생
석산고등학교의 동아리 ‘미네르바의 올빼미’에서 서기를 맡고 있는 안현 학생이 가장 먼저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떨리는지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안현 군은 먼저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선사’와 ‘역사’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학생 중 한명이 손을 들고 일어나 ‘기록의 차이’라고 대답했다. 안현 군은 이렇게 쉽게 대답할 줄 몰랐는지 당황한 듯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순수한 그 모습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우리가 고전문학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인문학이다”며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이 침체돼있는데, 우리는 역사와 사회를 배우는 학생으로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안에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번에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등학생이 주변에서 접하는 흔한 주제를 정해 토론식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펴낸 책 ‘생각의 함수 f(x)’에서는 대학 입시 및 학과 정보,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평가방법의 문제점, 교내폭력, 학교란 무엇인가 등의 주제를 다뤘다.

그는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1학년으로만 구성돼 선배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하지만 책 쓰기 활동을 계속 할 수 있고, 인문학 탐구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동아리가 ‘인문학’이라는 키워드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 활동을 2학년, 3학년까지 쭉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내 인생에 무늬를 새긴다면

학생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나, 생각들, 가치관 등을 어떻게 모두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10개 중·고등학교 동아리의 책들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한다.

먼저 금호중학교 동아리 ‘꿈결글새롬’의 ‘고민, 출구를 찾다’라는 수필집이다.
중학생 때는 수많은 고민과 꿈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가게 됐는지 직접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며 자신만의 관점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고민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중학생만의 특유한 표현이 미소를 자아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찾아왔지만 고기 하나 없는 풀밭에서 나는 또 한 번 좌절하고야 말았다’라고 박찬결(16) 군은 표현했다. ‘풀밭’이라니! 이 한 단어만으로도 찬결 군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두 번째로 숭의중학교 인문학 동아리 ‘HCF(Humanity Consilience Festival)’의 ‘꿈쟁이 중학생의 인문학 콘서트’라는 수필집이다.
중학생의 눈으로 본 인문학 활동과 인문학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담았다.
3학년 오태화 군의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란 프롤로그로 시작하는데, 그는 여기서 인문학을 ‘떡살’로 비유했다. 떡에 멱살로 새겨 넣은 무늬인 떡살처럼 지루하고, 안일해 질 수 있는 우리의 인생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주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저자들은 무상급식 등 사회적 이슈를 논의하는 등 인문학 활동과 강의 등을 통해 느낀 점들을 고백했다.

네가 날개짓하는 이유를 대라

세 번째로 운남중학교 동아리 ‘독서나눔반’의 ‘학생다반사’와 ‘중1 생각’이라는 수필집이다.
‘학생다반사’는 중학생들에게 늘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갔다. 또한 책 중간중간 들어가는 삽화들도 학생들이 직접 그려 넣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1 생각’은 말썽꾸러기 중학생 10명이 모여 만든 책이다. 수업시간은 ‘졸린 시간’, 점심시간은 ‘그나마 좋은 시간’인 아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어리고 철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족과 부모님을 말할 때 무척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면을 발견했을 때, 괜스레 마음이 푸근하고 넉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 번째로 광주석산고등학교 동아리 ‘미네르바의 올빼미’의 ‘생각의 함수 f(x)’라는 수필집이다.
고등학교 1학년생들은 아직 f(x)함수처럼 미완의 사고일 수 있지만, 이들의 성장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헤겔이 철학자들의 시대적 성찰이 때늦음을 비판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질녘에 날아오른다’라는 문장을 패러디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신새벽에 날갯짓한다’로 소제목을 정했다. 나름대로 학교가 갖는 의미를 철학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다섯 번째로 광주여자고등학교 동아리 ‘서우(暑雨)’의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아프게’라는 책이다. 18, 19세 여고생들의 고민과 생각,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 썼다.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위안부, 양성평등, 유전자 조합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창작 소설과 창작 시 등 자신만의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여섯 번째로 대성여자고등학교 동아리 ‘리케이온’의 ‘化(화)가 暖(난)다’라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여고생으로 살아가면서 마음 속 분노를 수필, 소설, 에세이, 시 등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꽃이 시련을 이겨내고 아름답게 피어나듯이 여고생작가들도 시련을 통해 한층 성숙해졌음을 뜻한다.

시를 왜 읽는가에 대한 물음

일곱 번째로 빛고을고등학교 동아리 ‘가온누리’의 ‘무지개의 시간’이라는 수필집이다. 다양한 체험활동과 책, 음악, 영화 등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글로 정리했다.
김민지(18) 양의 ‘김민지가 쓴 김민지’에선 ‘처음 중간고사를 보고나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되었고 나의 머리는 누구를 닮은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며 재미있게 표현했다.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김민지 양은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이 놀라셔서’ 각성하고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여덟 번째로 상일여자고등학교 동아리 ‘휴먼플러스’의 ‘너에게 묻어나’와 ‘시를 걷는 시간’이란 수필집이다. ‘너에게 묻어나’는 ‘너에게 묻는다. 어렵지 않게 나와 함께 읽는 책’을 줄인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친구들과 함께 읽고, 주제를 정해 책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 과정을 기록했다.
‘시를 걷는 시간’도 내용은 비슷하지만, 함께 읽는 것이 시라는 점이 다르다. 시를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느새 도서관에서 시집을 꺼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홉 번째로 조대여자고등학교 동아리 ‘꿈꾸는 담쟁이’의 작품들이다. 무려 네 권의 책을 출판했다. 단편소설집 ‘꿈꾸는 담쟁이’, 창작동화집 ‘소담소담 이야기 보따리’, 수필집 ‘문·이과 정상 회담’, 그리고 전기 ‘못다 핀 꽃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 이야기’이다.
이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마지막에 언급한 양금덕 할머니의 이야기다.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파란만장한 생애를 산 한 할머니의 자서전이 고등학생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가 깊다. 이 책에는 일본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단란했던 가족사와 어린 시절, 미쓰비시에서의 강제노역,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 등 양금덕 할머니의 고된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광주선광학교 동아리 ‘상상보따리’의 시집인 ‘상상보따리’이다. 광주선광학교는 정신지체 특수학교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들의 신선한 발상을 향기로운 글로 재탄생시켰다.

일상 속에서 겪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소재로, 말을 잘하는 학생은 말로, 언어 발달이 더딘 학생은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특수교사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동시를 지었다. 물레방아를 주전자라고 말하는 이들의 동심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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