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프고 서러웠던 그녀의 ‘인생이야기’
애달프고 서러웠던 그녀의 ‘인생이야기’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12.18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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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섭 할머니, 느지막이 한글 배워 한 글자씩 써내려간 자서전

숨 가쁘게 달려온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서전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때로는 감추고 싶은 과거를 떠올리며, 집안 환경이 불우했던 유복했던 간에 유년시절부터 노년까지 살아왔던 인생 이야기를 글로 써내기란 작가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동구노인복지종합복지관에 ‘브라보 마이라이프’를 외치며 머리가 새하얀 어르신들이 큰일을 냈다. 한글조차 모르고 굴곡진 근대사를 살아온 어르신들이 글을 배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자서전 쓰기에 참여한 20명의 어르신들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삶의 지혜, 고달픈 인생사를 담아 자신이 살아온 길을 허물없이 세상에 알렸다.

그중 한글을 쓰지 못하고 구구단만 겨우 외우고 20여 년 동안 문구점을 운영해왔던 김섭(82) 할머니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김섭 할머니는 연필로 글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동냥글을 배웠었다. 그러다 지난 2008년 동구노인종합복지관에 ‘한글교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억, 니은, 디귿 한 글자씩 배워나갔다.

젊은 시절 가슴속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말을 들으며 힘들게 살아온 김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지내온 여생을 떠올렸다.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태어난 지 20일도 되지 않아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반평생 넘게 마음 고생을 하고 지내왔다고 한다. 키도 작고, 평생을 숨기고 싶었던 검은 얼굴 때문에 그녀는 새어머니와 남편에게 천대를 받으며 눈물로 살아왔다.

김 할머니는 “내 얼굴이 흉해 모두다 상처가 되었고, 기죽어 살아오면서 영광 법성의 소문난 거지 수바우에게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듣고 평생 가슴에 남게 됐었지, 얼마나 새엄마가 미웠는지 몰라”라며 “결국 19살에 외할아버지가 중매를 서주어 결혼을 하게 됐지만, 남편은 검정색으로 변한 반쪽 얼굴을 보고 말도 걸어주지 않았고, 결혼 이후 4년 동안 말 두마디 정도만 하고 살았었지”라고 서러울 정도로 고생했던 기억에 눈물이 맺혔다.

그렇게 남동생 3명을 키우며 엄마에게 대신 매를 맞은 적, 절구통에 손이 다쳐 피를 먹겠다고 달려드는 닭과의 씨름, 결혼 이후 시댁 식구와 함께 살아 매번 유방을 감추기 위해 나무청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일, 결혼 7년차에 큰 집으로 이사해 첫 아이를 갖게 된 일 등 젊은 시절 모진 고통을 겪어가며 가슴 저며 가며 삼키고 싶었던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풀어냈다.

고되고 힘들었던 시집살이를 영광에서 줄곧 지내다 김 할머니는 56세 나이에 광주로 오게 됐다. 아들에게 문방구를 차려주었지만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구단 정도만 알고 있던 김 할머니는 동구 서석초등학교 정문에서 문방구를 운영했다. 하지만, 글을 쓰지 못하는 탓에 외상을 가져가는 학생들에게 종이를 내밀어야 했다. 그래서 중간에 준비물을 훔쳐가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15여년 정도 문방구를 운영하던 김 할머니는 동년배 노인들이 글을 배우기 위해 가게로 노트를 사러 오는 모습을 바라보게 됐다. “나는 배울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적자로 운영 해왔던 문방구를 차근차근 닫을 생각으로 정리하면서 2008년 한글공부를 하게 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기쁨을 맞이했다. 사위 덕분에 평생의 한이 되었던 얼굴의 흉을 제거하는 수술도 받게 되고, 정상적인 얼굴로 남은 노년의 삶을 살게 됐다.

김 할머니는 “생각해보면 하루가 1년같이 길던 세월을 지낼 때 마음 아프고, 한 많은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어렵게 글을 배우며 써왔던 자서전을 가슴에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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