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아오는 순간!!
밝아오는 순간!!
  • 이보라 소설가
  • 승인 2014.12.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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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중에 동지와 동지 팥죽음식에 유래

▲ 이보라 / 소설가
동지섣달에 긴 밤 허리를 잘라내어 춘풍 이불 아래 넣었다가 당신이 오시면 굽이 굽이 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밤이 길고 추운 계절이라는 의미이며 누군가와 뜨거울 만치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다는 얘기일 겁니다. 이렇게 동짓달과 섣달을 합친 한겨울 중에 밤이 가장 긴 날 동지(冬至)가 있습니다.

동지를 옛사람들은 죽음과 같은 어둠으로부터 밝음이 태동하는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태양신에게로 경건히 제사를 올리거나 축제를 열었고 산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창이나 문에 바르면 사악한 기운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동지를 한 해의 시작이며 작은 설이라 여겼습니다. 살생하는 대신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이웃과 나누었고 집 안 구석구석에 뿌려서 잡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귀신의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그 팥죽 속에서 하얗고 동그란 새알심을 건져 먹으면 어느새 사람의 영혼까지 돼 맑아진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동지란 밝아오는 순간을 우리가 이웃과 나누는 날일 뿐만 아니라 길고 추운 밤일수록 다 같이 안전하게 견뎌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인간 삶의 아름다운 지혜를 실천하는 동짓날의 미덕은 다행스럽게도 오랜동안 세시풍속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바쁜 현대인들에게 언제부턴가 팥죽은 별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지난해 동지에 작은 암자를 찾아 긴 줄 끝에서 한참 발을 구르다가 마침내 맛볼 수 있었던 팥죽 한 그릇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받아먹어야 겨우내 무탈할 것만 같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려 보이는 삭발 머리로 내내 서서 죽을 푸고 나누는 비구니 스님의 얼굴이 짧지만 따뜻한 겨울 해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얼굴에 어린 미소는 내 순서가 다 되도록 사라질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받아든 것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의 기쁨이었습니다.

어떤 팥죽 한 그릇은 그냥 팥죽 한 그릇이 아니고 인간 삶에 정이고 아름다움이며 나눔입니다. 올해도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이웃을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동짓날에 마음 밝아오는 순간을 당신과 함께 나누며 우리들의 다복과 다행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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