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3)
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3)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4.12.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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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모던일본> 조선판 1940년호는 ‘미나미총독은 말한다’의 기자와의 대담록을 싣고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도키사부로의 ‘조선의 황국신민화 운동’을 게재하고 있었다. 총독부 학무국장은 이나미 총독의 통치는 내선일체를 내용으로 하는 일본화운동임을 다짐하고 있었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조선은 그냥 식민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중일전쟁 병참기지의 역할을 갖게 되어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하는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미나미 총독의 말을 빌리면 ‘반도인은 매우 의욕적이고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충량한 황국국민으로서 자각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우리 황국 일본의 최전선으로서의 임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걸세. 반도가 갖고 있는 인적 자원, 지원병, 지능, 모든 문화적 성적을 총괄해 보면 일본의 최전선이라는 사명을 완수할 것’이라고 기대해도 충분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일본의 최전선으로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도록 내정을 새롭게 펼치는 방안으로 황민화 운동을 전개하고 창씨개명을 달성하는 내선일체는 한국인에게는 민족말살정책이지만, 일본에게는 민족의 내포를 확대하면서 전시 수요에 조선을 충당시키는 일본 나름의 조선 유인책이었다.
총독은 내선일체의 목표가 국방생산력의 획득 촉진임을 천명하고 지원병제도의 시행, 교육쇄신과 보급, 씨의 창설에 의한 문호개방,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의 설립, 신사의 창립이 그 구체적 조치임을 밝히고 있었다. 창씨개명과 같은 민족말살의 문화적 폭거도 조선인에게 일본인이 될 수 있는 문호를 개방한 것으로 창씨는 4천년만에 새로운 장을 연 역사적 사건이라고 우쭐대고 있었다.
총독부 학무국장은 황국신민화운동을 설명하여 ‘반도동포의 국체관념을 확립시키고 [나는 일본인] 이라는 황국신민의 명예로운 신념을 체득하여 혼연히 내선일체를 이룸으로써 황운을 보좌하고 황도를 선양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천황폐하의 적자로서의 강한 책임감, 일본인의 명예를 지키는 자부심을 함양하는 교육을 조선에서는 황국신민교육이라고 지칭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의 조선의 사상계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되면 내지인도 반도인도 같은 배를 탄 승객이지 않은가, 항구에 도착하는 것도 함께! 조난할지라도 함께! 이것이 운명이다‘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비일본적이라고 여겨온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마침내 ’일본정신을 연구하자, 황도를 알자, 거기에 살길이 있다, 는 목소리로 바뀌어 갔다는 것이 총독부 학무국장의 지적이었다.
총독부는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을 결성하고 각 지역 연맹과 실천세포인 40만에 이르는 10호로 구성된 애국반을 조직하여 전조선의 병참기지 조직화를 착실히 다져 국민총훈련에 임하였다. ‘모양도 마음도 피도 살도 모두가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내선일체의 이념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악랄한 전쟁몰이에 저항은 못할망정 마중물이 되어 그 향도를 자원한 무리들이 있었으니 이광수를 필두로 한 친일도배들이었다. 이광수의 친일 사설을 들어본다. “지금 조선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은 평등하고 동등한 일본국민이 되는 것이네… 고생스럽게 대일본제국이라는 넓고 넓은 일터를 버리고 좁은 소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랴”하는 계몽문학가 이광수의 현실주의가 그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람이 하늘의 구름을 불어내듯이, 아침 안개를 아침바람 저녁바람이 불어내듯이” 모든 종래의 조선적인 마음을 씻어내지 않으면 안되지요 하는 이광수의 친일욕구와 혐한 심리가 대조를 이루면서 고아 춘원의 어린 날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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